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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들을 쉽게 읽는다.
졸업 후에도 부모 집에 사는 청년들. "왜 아직도?" "이제는 독립해야 하지 않나." 나 역시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을 오래 보다 보니, 그 판단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었다. 속도였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살아온 20대를 기준으로 지금의 20대를 읽는다. 그런데 그 기준이 만들어진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코로나 이후 경력의 공백이 생겼고, 인공지능이 직업의 지형을 바꿨다. 기회의 구조가 달라졌고, 경쟁의 방식이 달라졌고, 인생의 경로 자체가 달라졌다. 같은 출발선이 아니다. 같은 트랙조차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같은 시계로 시간을 잰다.
그래서 대화가 엇갈린다.
부모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압박을 주고, 자녀는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정으로 거리를 둔다. 기성세대는 "나는 이렇게 해냈다"고 말하고, 청년세대는 "지금은 다르다"고 말한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둘 다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려는 데서 오는 마찰이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속도를 맞추는 것도 아니다.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함께 인정하는 것. 내가 살아온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세대 갈등의 본질은 능력의 격차가 아니라 시간의 간극이다. 그리고 그 간극은 설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설명하려는 노력, 그 느리고 불편한 과정에서만 조금씩 줄어든다.
어쩌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속도로 걷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가 왜 그 속도로 걷고 있는지를, 판단 대신 질문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