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오전이 분노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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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4월 3일 금요일 오전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새 책이 세상에 나왔고, 존경하는 분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뜻밖의 영상 프로젝트 수주 소식까지 들어왔다. 봄 햇살이 내려앉은 캠퍼스를 걸으며 나는 오늘 하루가 통째로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 날.

그 기분을 품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계획은 단순했다. 봄을 주제로 짧은 글을 쓰고, 그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 한 단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이 첫 문장 앞에서 멈춰 있었다. 한 명씩 돌아다니며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수정을 요청받자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감정을 주변 친구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흘렸다.

그 순간부터 오전의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결국 일장 연설을 했다. 말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이건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몇주부터 쌓여온 불편함이, 그 학생의 태도가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 하루를 되짚었다.

오전과 오후 사이에서 무엇이 달라진 걸까. 날씨도, 나도, 강의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하나였다. 내 안에 이미 잠들어 있던 불편함이 깨어났다는 것.

분노는 대부분 그날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쌓여 있던 것이 적당한 순간에 표면으로 올라올 뿐이다. 그날의 학생은 원인이 아니라 출구였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도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한 명의 학생은 소중하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한 명이 전체의 공기를 바꿀 때, 가르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다. 감정이 실린 말은 내용보다 온도로 기억되고, 그 온도는 대개 반발을 만든다. 그렇다고 침묵하면 나머지 학생들에게 다른 메시지가 된다.

어쩌면 답은 그 학생을 바꾸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학생이 있는 공간에서 내가 어떤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것이 먼저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기 이전에, 내 감정을 다루는 일이다.

오늘 나는 봄 날의 기쁨과 오후의 분노 사이에서 그것을 다시 배웠다. 완벽한 하루는 없다. 하지만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는, 내일의 수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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