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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묘비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 윌리엄 제이가 영원히 잠들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던 사람이— 그가 살아온 길은 백 번이고 옳았도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죽어 있지 않은가?
읽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이렇게 짧은 문장이 이렇게 긴 질문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우리는 옳고 싶어한다. 그것은 본능에 가깝다. 논쟁에서 지지 않으려 하고, 틀렸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내가 완벽하게 옳아도, 상대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닫힌다. 논리가 정확할수록 상대는 더 방어적이 된다. 이기는 순간, 관계는 진다.
옳음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옳음은 그저 옳을 뿐이다.
진짜 설득은 다른 곳에서 온다.
상대의 말에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 주장 안에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먼저 인정하는 것. 그 순간 상대의 방어가 낮아지고, 비로소 내 말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다. 전략도 아니다. 사람을 얻는 방식이다.
윌리엄 제이는 백 번 옳았다. 그리고 결국 혼자였다.
옳음을 증명하는 삶과 사람을 얻는 삶은 다른 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묘비는 옳고 그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철학으로 살았는지를 기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