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말라카 해협에서 시작된 전기차 전략 下
전기차 산업은 중국에게 단순한 산업 분야를 넘어 다층적인 전략적 의미를 가졌다. 2010년대에 들어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첫째, 전기차는 에너지 안보 강화 수단이었다.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은 중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였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석유 소비를 줄이고, 중국이 강점을 가진 석탄 및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으로 수송 부문 에너지를 전환하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둘째, 전기차는 기술 주권 확보의 핵심 영역이었다. 중국은 첨단 기술에 대한 외국 의존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의 자립은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중국의 기술적 자주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셋째,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었다. 2000년대 후반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에 달했고, 이는 사회적 불만과 건강 위험을 초래했다. 전기차는 도시 대기질 개선을 위한 실질적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넷째, 중국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략이었다. 「중국제조 2025」에서 전기차는 10대 핵심 산업으로 선정되었다. 이 계획은 중국이 2025년까지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으로, 전기차는 그 중심에 있었다.
다섯째,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확대의 수단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내수 중심으로의 전환을 추구했다. 전기차 산업은 제조, 서비스, 인프라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확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2011년 발표한 「12차 5개년 계획」에서 전기차는 7대 전략적 신흥산업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어 2015년 발표된 「중국제조 2025」에서도 전기차는 핵심 산업으로 재확인되었다. 이처럼 전기차는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에서 일관되게 최우선 순위를 유지했다.
중국의 전기차 전략은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변혁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테슬라의 등장,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확대, 배터리 기술의 발전 등이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러나 중국의 전기차 전략은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맥락을 가졌다. 서구에서 전기차는 주로 환경 문제 해결과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접근되었다면, 중국에게는 에너지 안보, 산업 도약, 기술 자립이라는 더 복합적인 국가적 목표가 중심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전기차 정책의 일관성과 규모에서도 드러났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정책이 정권 교체나 정치적 논쟁에 따라 변동성을 보인 반면, 중국은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했다. 보조금 규모, 인프라 투자, R&D 지원 등에서도 중국은 다른 국가들을 훨씬 앞섰다.
또한 중국은 전기차를 단순한 제품이 아닌 전체 생태계로 접근했다. 배터리부터 모터, 전자제어 시스템, 충전 인프라,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체 가치 사슬을 육성하는 종합적 접근법을 취했다. 특히 ‘배터리 -> 부품 -> 완성차 -> 운영 ->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순환 경제 관점의 생태계 구축은 중국 전기차 전략의 차별점이
었다.
중국의 전기차 전략이 가져온 가장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는 당초 예상과 달리 국영기업이 아닌 민간기업들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핵심 산업에서는 국영기업들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상하이자동차, 제일자동차, 둥펑자동차와 같은 국영기업들이 중심이었다. 전기차 정책 초기에도 이들 국영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BYD, 지리자동차와 같은 민간기업들, 그리고 NIO, XPeng, Li Auto와 같은 신생기업들이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반면 대형 국영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에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이는 중국 산업정책의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초기 중국의 산업정책은 국영기업 중심의 하향식 접근법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산업에서는 정부가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되, 구체적인 실행은 시장 경쟁에 맡기는 보다 유연한 접근법을 취했다. ‘국영이냐 민간이냐’보다 ‘성과를 내느냐 못 내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산업정책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단순한 ‘국가 주도 모델’에서 ‘국가의 방향 설정과 시장의 활력을 결합’하는 보다 복합적인 모델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후속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주제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 육성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나 환경 이니셔티브를 넘어, 에너지 안보, 기술 자주권, 산업 구조 고도화라는 복합적 국가 전략의 일환이었다. 석유 의존도 감소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내연기관 기술에서의 열세 극복,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서의 주도권 확보라는 다층적 목표가 전기차라는 단일 산업에 집중되었다.
특히 ‘말라카 딜레마’로 상징되는 중국의 에너지 안보 우려는 전기차 전략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이 통제할 수 있는 전력망을 통해 수송 에너지를 공급받음으로써 에너지 자주권을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동시에 전기차는 내연기관 기술에서 100년 이상 뒤처진 중국이 ‘기술적 도약’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서는 모든 경쟁자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었고, 중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9년 시작된 중국의 전기차 전략은 15년이 지난 현재, 명백한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이 되었고,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와 같은 핵심 기술 영역에서 중국의 우위는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결과—국영기업의 상대적 실패와 민간기업의 성공—는 중국식 발전 모델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역설적 결과를 가능하게 한 중국의 산업정책 메커니즘을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