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런던. 히스로 공항과 화이트 시티

'화이트 시티'라는 이름의 시작

by Dr Kim

런던 히스로 공항

2025년 6월 5일 리야드를 떠난 비행기는 오후 5시 반이 되어서야 히스로 공항 터미널 3에 도착했다.


런던의 하늘 아래에 비행기가 착륙하던 순간, '정말 영국에 왔구나'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힐링턴에 자리한 히스로 공항은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관문답게 늘 분주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붐비는 공항이라고 하니, 활주로를 오가는 비행기와 공항 터미널에 북적이는 인파만 봐도 그 말이 실감 났다.


입국 절차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났다. 2019년부터 한국인은 자동입국심사를 이용할 수 있어서, 줄이 길어 보여도 금방 통과할 수 있다. 다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여전히 대면 심사대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우리는 공항에서 시내로 가기 위해 고민 끝에 엘리자베스 라인(Elizabeth Line)을 선택했다. 히스로 익스프레스가 더 빠르긴 하지만, 너무 비싸서 현지인들도 잘 타지 않는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보라색 라인의 깔끔한 열차는 공항에서 런던 시내까지 이어졌고, 그 시간이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했다.


히스로 공항에도 근래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 2025년 3월, 인근 변전소 화재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공항이 하루 동안 완전히 멈췄다고 한다. 무려 1300편이 넘는 항공기가 취소되거나 회항했다니, 세계 공항이라는 시스템도 한순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전설적인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1970년 퀸에 합류하기 전, 바로 이 히스로 공항에서 수화물 담당 직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음악은 좋아해도 '본받을 만한 인생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젊은 시절이 이 공항 어딘가를 지나갔다는 사실이 작은 흥미를 더했다.


화이트 시티. 100년 전 세계박람회의 흔적 위에 선 도시

우리 숙소는 존 2(Zone 2)에 위치한 화이트 시티(White City)에 있다. 패딩턴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닿는 곳으로, 한때 소박한 주거 지역이었던 곳이 요즘에는 현대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곳이다.


화이트 시티라는 이름은 처음 들으면 다소 낯설다. 하지만 알고 보면 꽤 낭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08년, 이 지역에서 열린 프랑스-영국 박람회를 위해 건물 외관을 흰색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석고로 장식했고, 그 모습이 'Great White City'라는 별명을 남겼다. 이후 1909년 제국 만국박람회, 1910년 일본-영국 박람회까지 세계 각국이 모여들었던 화려한 전성기가 있었다.


지도를 펼쳐보면 Australia Rd, Canada Way, India Way 같은 거리 이름이 남아 있는데, 당시 박람회에 참여했던 나라들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박람회장에서 들려왔을 법한 환호와 음악, 각국의 전시물이 전했던 문화적 향연을 상상해 보니, 지금은 조용한 주거지가 되어버린 이곳의 오래된 반짝임이 잠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박람회의 시간을 길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모든 축제는 멈춰버렸다. 박람회장은 전쟁에 필요한 항공기 조립 창고로 바뀌었고, 근처에는 부상병을 위한 군 병원도 세워졌다. 이 지역의 묵직한 역사적 층위를 마주한 순간, 지금의 런던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건을 견디며 만들어졌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의 화이트 시티: 오래된 흔적과 새로운 도시가 공존하는 곳

화이트 시티는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 BBC 방송국이 들어서며 미디어 중심지로 성장했고, 2017년에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화이트 시티 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혁신 지구'로도 탈바꿈 중이다. 최신 연구 공간과 창업 공간이 모여 있는 이곳은, 조용한 동네에 묘한 활기를 더한다.



특히 유명한 곳은 웨스트필드 런던(Westfield London)

2008년에 문을 연 거대한 쇼핑몰은 이 지역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 놓았다. 축구장 서른 개 규모의 매장들이 들어서 있고, 개장 당시에는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쇼핑센터였다. 지금도 주말이면 쇼핑객들로 가득하다.


구글 어스나 맵으로 본 화이트 시티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20세기 초 박람회의 흔적, 전쟁의 상흔, BBC와 대학 캠퍼스, 그리고 웨스트필드까지, 정말 다양한 시대가 한 지역에 포개져 있었다. 그 한복판에서 우리가 8일 동안 머무를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설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