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도 드넓은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창덕궁 후원이 아름답다고는 많이 들었지만, 약 10만 평이나 되는 규모인 줄은 몰랐다. 무려 창덕궁 전체 면적의 2/3에 해당한다. 집 뒤에 있는 정원이나 작은 후원(後園)이 아닌 대궐 안에 있는 후원(後苑)이었다. 1883년 <조선왕조실록>에도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는 일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더 넓게 다가왔다. 2025년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날 일은 없겠지만, 그 이야기를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후원의 첫 구역은 부용지다. 부용지 가는 길에 단풍나무가 있는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초록별이 무수히 떠 있다. 몇 주 뒤, 빨갛게 물이 들면 더 예쁘다고 한다. 부용지 주위에는 말로만 들어본 규장각을 포함해 부용정, 영화당 등이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부용지를 감상하기 특히 좋은 자리는 영화당 툇마루다. 영화당 안쪽은 과거급제자라도 쉽게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영화당 툇마루에 앉아 부용지를 감상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화려함의 최대치가 구사되었다는 부용정부터 부용지 안에 양쪽으로 멋지게 뻗은 소나무가 있는 작은 섬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정조 임금이 정해진 시간 안에 시를 지어 올리지 못한 신하들을 그 작은 섬에 유배를 보냈을 장면이 그려져 미소가 지어졌다.
부용지를 뒤로 하고 아쉬움에 부용지 전체를 눈에 담고 마지막으로 영화당(暎花堂) 현판을 한 번 더 봤다. 주변에 꽃이 많이 피어 풍광이 아름다운 영화당인데……. 영조가 영화당 현판을 쓰고 8년 뒤인 1762년, 다시 이곳을 찾은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훗날 정조가 규장각 주합루의 현판을 걸면서 느꼈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다음으론 애련정, 의두합 기오헌, 연경당을 둘러보았다. 애련지와 애련정은 부용지, 부용정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둘레에 나무들이 심어 있어 조화로웠다. 의두합 기오헌은 명석했던 효명세자가 열여덟 살 때 독서처로 삼겠다고 한 곳이다. 연경당 또한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생각하며 지었다고 한다. 연경당의 장락문(長樂門)을 보니 몇 년 전 다녀온 수원화성의 장락당(長樂堂)도 떠올랐다. 길이 즐거움을 누리라, 누가 들어도 좋은 말이다. 하지만 스물두 살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효명세자였기에 부모님께 전하는 그 마음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구역은 관람지가 있는 존덕정 영역이다. 창덕궁에 17개의 정자가 있는데 이 구역의 정자 모습들이 특이했다. 관람정은 부채꼴 모양이며 존덕정은 육각형 모양에 천장도 육각-사각-육각으로 화려했다.
특히 관람정에는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 자서」가 걸려 있어 통치자로서의 바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구역인 애련지의 애련정도 풍경의 번화함만 구경하겠다는 즐거움이라면 취하지 않겠다는 숙종의 뜻이 서려 있는 곳이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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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창덕궁 후원,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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