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시간 여행지
군산은 보령, 부여와 달리 즉흥으로 가게 되어서 이틀 전에 주요 관광지를 알아보고 전날인 크리스마스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출발 당일 새벽에 아침밥을 먹으면서 30분 정도 보고, 눈과 강풍으로 여행 일정을 일찍 마무리하고 숙소에서 마저 봤다. 의도치 않았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니 낭만적이었다.
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군산에 왔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인 이성당도 들렀다. 군산에도 전날 눈이 왔는지 바닥에 눈도 있고 언 땅은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걸으며 이성당에 도착했다. 구관과 신관이 같이 있었는데 과거와 현재의 시간 차이가 건물 외양만 봐도 느껴졌다. 빵을 구매하는 건 구관이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단팥빵, 야채빵을 사는 사람들로 줄이 꽤 길었다. 그래도 결제까지 10분 정도 걸렸을까. 시그니처 메뉴인 단팥빵, 야채빵은 예상한 맛이었지만, 80년간 사랑받은 곳이라 먹어 본 게 의미가 있고 소중했다.
다음 코스는 초원 사진관이었다. 주차질서라고 쓰여 있는 다림이의 차만 봤을 뿐인데 반갑고 애틋했다. 사진관 입구에는 정원의 오토바이도 세워져 있었고, 다림이의 증명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관 내부에는 명장면과 대사, 크리스마스 포토존이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정원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감흥이 깊지 않았을 것 같다. 전날 본 덕분에 영화 속 두 인물의 마음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성당, 초원사진관과 함께 군산 여행 대표 코스가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가 살았던 집이어서 정원에 탑도 있고 멋진 나무도 있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다 보니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았다.
군산 여행 대표 코스를 보고도 시간이 남아서 ‘1930 근대 군산 시간여행’에 어울리는 구 군산 세관, 군산항 뜬다리도 보러 갔다. 1908년 지어진 구 군산 세관 건물은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데 곡물을 수탈당한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뜬다리도 일본이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보낼 때 사용했다고 한다.
뜬다리 근처에 25년 8월 말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인 군산항 1981 여객터미널이 있었다. 겉만 봤을 때는 정말 여객터미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 곳을 다녀와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덕분에 편히 쉬었다. 여객터미널 내부에는 ‘느린 우체통’도 있어서 별달리 이름 환한, 불 켠 듯 환한⁕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낼 수도 있었다. 나도, 받는 이도 시간 여행지다운 군산이었다.
⁕여행지 상점가에서
그림 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별달리 이름 환한
사람하나 있어야겠다고
각별히 절감한다
중략
여행지에서
그림 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불 켠 듯 환한 이름 하나의 축복이
모든 이 그 삶에 있어야 함을
천둥 울려 깨닫는다
-김남조, 그림엽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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