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물소리가 울음소리로
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희ᄋᆞᆸ고
내 ᄆᆞ음 둘 듸 업셔 냇ᄀᆞ에 안자시니
져 물도 내 안 ᄀᆞᆺᄒᆞ여 우러 밤길 녜놋다
몇 년 전에 영월 장릉과 청령포에 다녀왔었다. 청령포에서 볼 수 있는 ‘천만리 머나먼 길에~’라는 왕방연의 시조는 언제 읽어도 마음이 아프다. 삼만리가 약 12,000km라면, 천만리는 삼만리의 333배 거리로 물리적으로 가기 힘든 먼 거리다. 초장에서부터 ‘천만리’라는 심리적 거리를 통해 시적 화자의 애절함이 전해진다. 이러한 감정은 종장에서 물소리조차 울음소리로 들리며 깊어진다. 소나무가 우거진 청령포는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지만,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마음과 발걸음이 무겁다.
코로나 이후로 영화관에 갈 일이 드물었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단종의 삶을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고, 관람평도 좋아서 보고 싶었다. 청령포에 갔던 기억, 역사를 소재로 한 천만 관객 영화 광해를 재밌게 본 기억도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마침 친구도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해서 연휴 마지막 날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박지훈 배우는 단종의 복잡한 마음을 눈빛으로 표현해 몰입도를 높였고, 광천골 촌장 엄흥도를 연기했던 유해진 배우의 연기는 한(恨)의 정서를 웃음으로 해소하는 선조들의 해학적인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알려진 엄흥도를 단종의 마지막 선택을 도운 인물로 꾸며, 단종이 덜 외로워 보이도록 한 설정도 좋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어린 나이에 외딴곳에 유배를 가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힘들어하는 단종의 모습에 눈물이 맺혔다. 특히 엄흥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턱까지 눈물이 흘렀다. 친구가 휴지를 챙겨가야겠다고 해서 나도 손수건을 챙겼는데, 먼저 휴지를 챙겨가야겠다고 한 친구는 휴지 쓸 일이 없었고, 덩달아 손수건을 챙긴 나만 울어 웃기기도 했다. 다시 청령포에 간다면 내 귀에도 물소리가 울음소리로 들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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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왕과 사는 남자’ 공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