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반짝임 11

든든한 버팀목

by 천천히 꾸준히


도보로 출근하다 보니 일기 예보를 참고하되, 날이 흐리면 우산을 챙기는 습관이 있다. 이번 주에는 눈 소식이 없었는데 출근길에 두 번이나 가루눈이 왔다. 가루눈이 처음 온 날은 나무에 눈이 쌓여 있었지만, 길에는 쌓이지 않고 금세 녹아 사라졌다. 가로수의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하얀 눈꽃들이 장관이었다. 우산도 있었고, 길이 미끄럽지 않아서 눈이 온 풍경을 눈에 담으며 기분 좋게 걸었다.

사흘 뒤 다시 내린 가루눈은 바닥에도 제법 쌓였다. 폭신한 함박눈이 아니라 얇게 쌓여 살짝 얼은 상태여서 잘못하면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출근길은 절반 이상이 오르막길이다. 길이 미끄러워 눈꽃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보폭을 줄이며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는데 회색과 형광색이 섞인 작업복을 입은 분이 염화칼슘을 뿌리면서 내려오고 계셨다.

미끄러워 걱정이었는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염화칼슘은 작은 알갱이지만 발에 밟힐 때마다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출근길의 마지막 오르막길에는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지 않았다. 주변에 상가도 없고, 아파트 방음벽 아래 버스 정류장만 덩그러니 있었다. ‘여기는 어쩔 수 없겠다.’ 하며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걸으려 했는데 일상복을 입으신 할아버지가 눈을 치우고 계셨다. 갑자기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길을 자신의 집 앞처럼 치워주셨다. 초록색 솔이 달린 긴 빗자루를 좌우로 시원시원하게 움직이며 눈을 쓰셨다. 생각지 못한 도움에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께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에 잠시 멈춰 서서, 꾸벅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지나왔다.

염화칼슘을 뿌려주신 분께도 감사했지만,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참으로 컸다. 그저 지나가는 학생들, 직장인들이 무사히 그곳을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누구라도 추웠을 아침 시간을 내어 주셨을 것이다. 염화칼슘처럼 온몸으로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터널 안이나 도로변을 환히 비춰주는 나트륨등을 보거나, 눈이 오면 종종 그분이 생각날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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