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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드로스치 Apr 23. 2024

만남(1)

“아차차차"


출근준비를 하던 논은 다시 한번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환생국으로 와서 일을 돕기 시작한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드디어  삼신 셋을 모두 만난다고 생각하니 절로 긴장이 되었다. 몇 번을 빗었지만 논은 다시 한번 깨끗이 빗질을 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환생궁에 도착하자 가브리엘라가 큰 목소리를 내며 아이 영혼들을 말리고 있고, 늘 영혼의 꽃밭에 있던 바르가 꽃을 잔뜩 들고 와서 여기저기 공간을 꾸미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를 잘 비우지 않는 도서관 사서까지 내려와 있고 환생상담지에 있어야 할 미카엘, 얀, 디아, 그리고 다른 여럿 말라크들까지 모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플로피,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 다른 삼신님들 만나러 간다지 않았어?”


논은 로비 구석에서 아이들이 놀던 공을 열심히 치우는 플로피에게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논, 오늘 진짜 역사적인 날이다. 드디어 그분을 뵙네.”


“또 환생이래.”


“내 생전에 그분을 못 뵐 줄 알았는데…”


“우리는 이미 생후다.”


“알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분을 뵙는다는 거지.”


양쪽 플로피들을 말을 이해하지 못한 논이 다시 재차 가운데 플로피에게 물었다.


“누구 말이야. 누가 오시는데…”


“영혼 7777번 님, 그분이 드디어 99번째 환생을 마치고 오신다. 오늘 99번째 삶을 마감하셨고, 이번에도 환생국으로 오시지.”


“99번째? 인간 환생은 열 번 아냐? 어떻게 그렇게 많이 환생을 하는 거야?”


“아.. 논은 그분 이야기를 모르는구나. 그게…앗… 오시나 봐.”


말을 하던 플로피가 출입구를 보더니 그쪽으로 뛰어갔다. 논도 플로피를 따라 모든 말라크들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  어느새 삼신이 로비에 내려와 가디언과 함께 들어오고 있는 작은 체구의 영혼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영혼 7777번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영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삼신을 바라봤다. 삼신의 눈을 보던 영혼의 눈에 파란빛 이체가 돌며, 몸 전체로 빛이 퍼져나갔다. 그 순간 나이 든 할머니의 모습은 사라지고, 20대의 모습을 한 젊은 청년이 삼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삼신님"


영혼이 인사를 하자 바르가 수줍게 꽃다발을 넘기고 다른 말라크들은 서로 악수를 부탁했다. 평소 잘 흥분하지 않는 디아마저 영혼과 악수를 하고 얼굴을 붉혔다. 플로피는 세 머리 각자를 쓰다듬어 달라더니 사인까지 받아냈다. 한바탕 요란한 환영회가 끝나고 삼신이 영혼과 함께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말라크들은 모두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플로피와 논은 삼신의 대화가 끝나는 대로 떠날 준비를 하며 1층 로비에 앉아 삼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플로피,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저 영혼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환생하신 거야? 그리고 99번 태어났다면 거의 최초의 인간이라는 건데 왜 번호가 7777이야?”


“휴… 논. 너는 전혀 모르는구나. 순서랑 번호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


 플로피 세 머리가 혀를 쯧쯧쯧 차며 고개를 동시에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번호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99번 환생하는 거야? 환생은 열 번 아냐?”


“맞다. 논, 기본은 열 번이지. 그런데, 논 너는 열 번의 환생을 마친 영혼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나?”


“열 번을 마친 후?... 천국에 가는 거 아냐? 아니면 바르처럼 천상계일을 돕거나.”


“그렇지. 영혼의 씨앗이 탄생하고 열 번의 환생을 시작하면 중간에 지옥이나 천국으로 바로 가지 않는 한  열 번 환생을 하게 돼. 열 번을 마치고 나면 영혼들은 대부분 이곳에 남지. 그런데  이들 중에서 천국을 가지 않고 환생을 원하는 자들이 있어. 아예 천국행이 정해졌는데도 환생을 원하는 자도 있고.”


“그래? 그런 경우 그 들은 또 환생할 수 있는 거야?”


“원래 천국행인데 환생을 원한다면 일단 열 번의 환생을 다 채울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돼. 환생은 무조건 열 번 세트거든. 지옥에 가는 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영혼들은 열 번 삶을 마치고 바로 천국을 가는 거지. 그런데 열 번을 다 채웠는데도 또다시 환생을 하고자 하는 영혼은… 일단 다시 영혼의 씨앗이 되어야 해. 현생에서 갖게 된 죄와, 더러움을 모두 씻고 다 정화를 시킨 후 다시 환생을 하는 거지. 영혼 7777번 님은 환생국 최초로 벌써 9번의 영혼의 씨앗 경험이 있는 분이지.”


“우와…99번 의 삶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지옥을 가지 않은 거야?”


“지옥행은 단 한 번도 없으시지.부터 물론 지옥과 환생의 갈림길에 설만큼 선생포인트가 부족했던 적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99번을 살며 즉시 천국행이 …”


말을 멈춘 플로피 두 머리가 고개를 뻣뻣하게 높이 세우고는 가운데 머리도 따라 하라며 툭툭 쳤다. 마지못해 가운데 머리까지 머리를 높이 세우며 논을 바라봤다.


“응?”


“논, 봐라. 하나 둘! 셋! 세 번이나 즉시 천국행이었다고"


“세… 번이 많은 거야?”


“그럼. 즉시천국행은 쉽지 않다. 논, 귀인이지. 천국행을 가는 대부분의 영혼들은 열 번을 삶을 마친 후 정해지는 거야. 열 번의 환생 의무를 채우지 않고 천국행이 정해졌다는 건  어마 어마한 일이야. 거의 인간세상에서 멸망할 한 나라를 구한 급이지. 영혼 7777번 님은 즉시 천국행 세 번 외에도 벌써 9번의  천국행까지 모두 12번의 천국행을 사양하고 환생을 하신 거야.”


“엄청나게 대단한 영혼님이시네. 그럼 이번삶을 환생하시면 이제 100번째 삶이신 거지?”


“그…”


플로피의 대답이 끝나기 전 대화를 마친 삼신과 영혼이 논과 플로피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 이제 출발하시죠.”


“네?... 저기… 영혼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논의 질문에 삼신과 영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피의 왼쪽머리가 영혼의 다리에 고개를 비비대며 온몸으로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논도 설레는 마음으로 환생궁을 나서기 시작했다.

환생궁 앞에는 구름 두 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구름에 플로피와 삼신이 타고 뒤에 논과 영혼이 함께 탔다. 영혼은 구름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발을 살짝 올려놨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놨다. 꼭 이곳에 올 무렵의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어 논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안 빠져요. 아래 단단하게 받쳐주니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말을 마친 논이 먼저 올라타자 영혼도 조심히 구름에 올라타 엉거주춤하게 앉았다.


“말라크 님, 왜 걸어가지 않나요?”


“아.. 저는 말라크가 아니에요. 삼신님을 돕고 있는 논이라고 합니다. 영혼님, 오늘 저희가 어디 가는지 혹시 들으셨나요?”


“네, 다른 삼신님들을 다 같이 뵙기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약속장소가 환생국이 아닌가요?”


논은 허공에 손을 쫙 펴 내비게이션을 꺼낸 후 목적지를 말했다.


“인간 마을"


목적지가 입력되자 구름이 천천히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논은 영혼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간마을이요? 인간이 사는 세계에 가는 건가요?”


“아니에요. 이곳 천상계에도 인간이 사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곳은 처음인데 다른 분들께 들은 이야기로는 인간의 몸은 그대로 현실세계에 있고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래요. 오늘 모임에 염라대왕님도 오시기로 해서 모임을 환생국이 아닌 환생국과 지옥의 경계선쯤에 있는 곳으로 정했데요. 환생국 내에서는 걸어가거나 출입구를 통해 연결이 되지만, 그 외에는 구름을 타고 이동해야 해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영혼을 보며 논은 입을 뗐다 닫았다 망설이고 말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물어볼 거 있으세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아…. 저 … 궁금해서요. 영혼님은 다음번 생도 환생하시는 건가요?”


“환생이 정해졌으니… 이곳에 왔겠죠?”


“그럼.. 100번의 삶을 마치고 또다시 환생하실 건가요?”


논의 질문에 영혼은 대답대신 주변에 스쳐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글쎄요… 아직 열 번 세트 중에 한 번의 삶이 남았고… 결정은 그때 하지 않을까요? 제가 원한다고 해도 지옥행이면 다시 태어날 수 없잖아요.”


“아…그렇지만 영혼님은 99번의 삶 중 단 한 번도 지옥에 가신적이 없으시잖아요. 그 말은 다음번 삶도…”


“보장할 수 있으세요?”


“네?”


“99번을 죄를 짓지 않고 살았다고 다음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요.”


“그건…그렇지만… 일단 선행점수가 높으시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실 거고 그러면 삶도 좀 더…”


“삶은 알 수 없는 거랍니다. 삼신님은 늘 점지후 환생으로 인생의 시작만 잡아준다고 나머지는 인간의 몫이라 하시지만… 막상 삶을 사는 인간은 그것을 알 수가 없답니다. 어떻게 흘러갈지 삶의 방향을 아는 이는 단 하나도 없죠. 그건 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들도 흐름을 따를 뿐이니…. 인간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그저 바라만 보잖아요. 그것도 흐름이라고.”


영혼의 대답에 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과거의 기억이 없기에 인간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몰랐다는 것은 하찮은 변명 같았다. 어떤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단어를 찾고 있는데  옆에서 ‘흠… 흠' 하는 소리가 들려 논은 고개를 돌려 영혼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격했죠. 이번 삶에 고난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아니에요. 영혼님 제가 삶을 너무 쉽게 평가했습니다.

저는… 과거의 기억이 없어요. 제가 전생에 인간이었는지 여기서 일하던 말라크였는지도 몰라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있다가 처음으로 ‘논'이라는 이름을 받고 제가 존재하기 시작했죠.

환생하는 영혼들의 기억을 돌려주는 말라크들도, 그리고 삼신님도 제 기억을 돌려줄 수가 없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건 지난 생 일지도 모를 한 순간뿐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하나가 제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더라고요. 맞아요… 삶이 쉬울 리가 없죠.”


논의 대답에 영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는 99번의 삶의 기억이 모두 돌아왔어요. 순간순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삶의 큰 줄기들은 어느 정도 기억을 하지요. 이 삶 중에 삶이 평탄하고 큰 일없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답니다. “


논은 내비게이션을 한번 더 확인하고 영혼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영혼님, 삶 중에 세 번이 즉시천국행이셨다는데… 혹시 그 삶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어떻게 살아야 즉시 천국인지 궁금해서요.”


“사실… 전 제가 어떻게 즉시 천국행을 받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번 열심히 살았거든요. 특히 처음 천국행이 정해진 삶은… 그냥 주어진대로만 산 게 다였답니다.”


“주어진대로요?”


“네… 지금의 기억으로 치면 그땐 거의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이니까요. 지금처럼 복잡한 문명도  인간관계도 없었고,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어요.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았지요 다만…”


“다만?”


“죽음직전에 동료들을 구했습니다. 제가 하나 희생하면 목숨 열은 살리겠구나 싶어서… 몸을 던진 게 답니다.  상당히 짧은 삶이었어요.  이번삶은 제가 여든세 살에 마무리했는데 그 전의 삶들은 그렇게 길지가 않았어요. 초반에는 스무 살까지도 못산 경우가 많았지요.”


“아… 다른 생명을 구하고 돌아가신 게 천국행 결정에 큰 영향을 줬나 보네요. “


“이곳에 와서 들어보니 평소에도 그 삶에선 선행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저는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산 기억 밖에는요. “


“그렇군요. “


논은 영혼의 대답을 듣고 왜 이 영혼이 그때 즉시천국행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선행을 펼치고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선행인지도 모르는 사람… 천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깨끗한 영혼이 지옥행 근처까지 간 삶은 어떤 삶일까 궁금증이 들었다. 시간만 있다면 영혼의 99번  모든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구름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구름에서 내리자 먼저 도착한 삼신과 플로피의 뒷모습이 보였다. 논과 영혼이 그곳으로 가까이 가자 삼신에게 가려졌던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곱슬곱슬한 진한 회색머리에 삼신보다 키는 작지만 옆으로는 좀 더 퍼져있는 체구의 온화한 여성이 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거리가 있었지만 논은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의 바로 앞까지 끌려가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의 파란 눈동자를 보았다. 파란 눈동자를 가진 중년의 여성… 바로 첫 번째 삼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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