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열심히 불을 옮기는(?) 사람들, 어울리지 않게 중간에서 멋진 척을 하고 있는 박해진. 곧이어 박해진의 엉덩이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응?
첫인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던가. 그만큼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데, 이 드라마(‘지금부터, 쇼타임!’)의 첫인상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박해진의 엉덩이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진귀한 장면을 볼 줄이야..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궁금해졌다.
“이 드라마는 어떤 내용이길래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저러고 있을까?”
<지금부터, 쇼타임!>에서 차차웅(박해진)의 직업은 마술사다. 아, 물론 엉덩이에서 불을 뿜어내는 마술사는 아니다. 저 장면은 사고였다. 사고 장면을 보고 그의 마술 실력에 의심이 들겠지만, 사실 차차웅은 작중 ‘이은결’의 라이벌로 나올 정도로 잘 나가는 마술사다. 그런데 그의 마술쇼는 좀 특이하다. 보조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불을 돌리고 카드를 날린다. 하지만 관객들은 무대에서 보조를 해주는 저 사람들을 볼 수 없으며, 무대를 찍는 카메라에도 차차웅만이 찍힌다. 왜 그럴까? 바로 그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귀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차차웅은 집안 내력으로 인해 귀신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귀신 직원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가내 수공업식 노동을 화려한 마술로 연출하며 대단한 마술사인 양 연기를 해왔다. 그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었던 것.
그렇다면,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은 차차웅은 왜 마술사가 됐을까?
그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다. 차차웅은 명예욕, 과시욕, 나르시시즘 모두를 갖은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고, 자신의 잘생긴 얼굴까지 어필할 수 있는 직업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때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과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그에게 혼자서 빛날 수 있는 마술사는 직업으로서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그가 자신의 집안에서 대대로 모셔온 장군신의 강제로 인해 한 열혈 경찰과 엮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고슬해(진기주)다.
정의감에 불타는 강국 파출소 열혈 순경 고슬해. 그녀는 연쇄살인범을 쫓다가 고인이 된 능력 있는 경찰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경찰이 되었다. 그녀의 꿈은 다시는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 그런 그녀에게 차차웅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아, 이성으로서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수사에 있어서 최고로 매력적이다. 그와 함께하는 귀신들은 상황 파악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피해자 귀신은 진범을 알려준다.
그러나 사람을 싫어하고, 남 돕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차차웅에게 정의감에 불타는 고슬해는 단지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제로 하게 된 그녀와의 공조를 대충 했으며, 시민경찰대로서 해야 하는 봉사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슬해는 그런 시니컬한 차차웅도 무장해제를 시키는 넉살과 대책 없는 비글미의 소유자였다. 잘 웃고, 잘 울고, 잘 먹고, 잘 뛰며, 명량 쾌활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런 그녀와 공조를 계속하면서 차차웅이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된다고 하던가.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봉사가, 그녀와의 공조가 자꾸 차차웅을 웃음 짓게 만든다. 무대에서의 화려한 마술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도 허무하고 빈 껍데기 같던 그의 삶이, 그녀를 만나 점점 다채로운 색깔을 띠어간다.
마술사란 결국 무엇일까.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슬해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사람에게 냉소적이었던 차차웅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유대감을 만들어나가며, 그들을 돕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선다. 또한 단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마술을 보여줬던 차차웅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기 위해 마술을 보여준다. 즉, 그는 고슬해라는 마술을 만나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기적을 행하는 ‘진짜 마술사’가 되어가고 있다.
“To love is to receive a glimpse of heaven(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라는 큰 공감을 하게 되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사랑하기 쉽지 않은 팍팍한 현실과 좀 더 많이 가질 것을,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을 강요하는 사회는 항상 사랑을 후 순위로 밀려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의 마음이 없어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왜 그럴까? 앞선 명언처럼, 천국을 엿볼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산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나 소중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사랑이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것, 또한 나 자신을 사랑할 것. 그리고 차차웅이 고슬해라는 마술을 만나 ‘진짜 마술사’가 된 것처럼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도 천국을 엿보는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