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고찰_고통의 소멸과 빛으로 들어가는 길목
죽음이란 얼마나 추상적이고 낯선가... 죽음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죽음은 늘 제삼자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고찰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를 읽는 동안은 죽음 자체가 1인칭으로 가깝게 바로 눈앞에서 그려지듯 보였다. 이것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죽음의 과정에 대해 이처럼 자세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 성공한 법관으로서 품위 있고 평범한 삶을 지향하던 이반 일리이치는 원인 모를 병을 얻으며 서서히 죽어간다. 육체적 고통보다 그를 더 괴롭힌 것은 주변 사람들의 위선과 방관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자신의 화려했던 삶이 사실은 텅 빈 '허위'였음을 깨닫는다. 결국 하인 게라심의 진실한 태도와 아들의 눈물을 통해 타인에 대한 연민을 발견하며, 죽음의 공포를 넘어 찬란한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소설의 처음은 주인공 이반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동료 표도르의 등장에서 시작되었다. 애도하는 듯하지만 그저 얼굴도장 찍고 돌아가 자신들이 늘 하던 카드게임 모임에 가자는 눈짓들이 오갔다. 가족들의 눈물 속에 오가는 세금 처리와 보험금 이야기 같은 허위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나 역시 이반의 죽음에 대해 관심 없이 흘려듣다가 뜬금없이 '역시 톨스토이 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톨스토이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다소 우화적인 내용들과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묘사가 아니었다.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자세하고 생생한 인물묘사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꽤 사실감 있는 인물들의 묘사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순간 내게서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습관처럼 다른 생각에 빠진 나를 잠깐 나무라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 앞에 각자 제 속에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이들 중에 내가 없다고 말할 수없었다.
'어쩌면 나는 잘못 살아온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온 것뿐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타일렀다.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에 대한 단 하나의 결론을 마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기인 듯 완전히 부인하고 제풀에 멀리해 버렸다.
무엇보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경험의 영역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임을 보게 된다. 이반은 한순간만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나을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죽음의 과정을 '검은 구멍 속으로 밀어 넣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나는 그의 죽음을 향한 물리적 육체적 변화에는 모든 것이 포기되는 내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순간 내 생각의 흐름은 존엄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또다시 내 자의식이 나서서 죽음이란 것을 목표로 생각하는 실수를 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사랑과 연민을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구원으로 인도하는 결과에 다다른다. 조금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상이라기보다는 평면적이라 우화 같은 느낌이지만 그의 삶의 초기작품을 보면 그가 인간을 무조건 단순하게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이러한 공식과도 같은 결론이 그렇게 진부하지 않은 이유는 그야말로 작가의 진심과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의 진심과 삶이 뒷받침된 진부하지 않은 작품은 어쩌면 그의 문학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귀족적 특권을 괴로워했고, 농민들과 함께 노동했으며, 결국 가출하여 간이역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노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허위에서 벗어난 진실을 향한 죽음을 찾아 떠났던 그의 용기 말이다.
"사랑과 연민이 구원이다"라는 이 결론은 그에게는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모순된 삶을 구원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싸워온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그 치열한 삶의 궤적을 알기에 그의 결론을 '진부한 도덕책'으로 치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이 아무리 진흙탕(허위)일지라도 개인의 영혼이 빛(진리)을 발견했다면 그 죽음은 승리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에게 죽음은 처음에는 '공포와 허무'로 다가오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빛과 생명'으로 승화된다.
여기에서도 톨스토이는 당시 그의 사상의 배경중 하나인 농민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농민은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인 게라심은 이반이 진실한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 붙잡는 밧줄과 같았다.
죽음에 거의 이르러서 이반은 이제 친숙해진 죽음의 공포를 찾아보았으나 눈에 뜨이지 않는가도 말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죽음이란 뭐냐? 아무 공포가 없기 때문에... 대신 거기에 빛이 있었다.
소설의 결말에서 이반 일리이치는 마침내 죽음을 '또 다른 삶이자 승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가 전해준 죽음에 대한 고찰은 내 마음의 무게를 많이 덜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말이 조금은 느껴졌다. 이반이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그 찰나의 문턱에서 보인 빛이 있음이 왠지 사실로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편견과 선입견이 실체 없는 두려움을 만들어 왔고 진심과 연민의 사랑이 없이는 진실을 찾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고뇌와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을 실천하며 살아온 그의 삶이 만들어낸 그의 죽음의 모습에 감동했다. 그리고 작품에서 이반이 깨닫게 된 그 죽음의 길목에서 본 '빛'을 만나기 위해 죽음에 임박해서 알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진심과 연민의 사랑을 배우며 살아가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싶었다. 빛이 비치는 그날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