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by 김호연 을 읽고
나는 <불편한 편의점> 책을 보자마자 대학로 연극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니 이미 대학로 뮤직드라마가 되어 오픈런으로 상설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읽자마자 첫 장에 나오는 편의점 주인 염여사 역할이 탐이 났다. 나는 전부터 은퇴하면 연극을 해보고 싶었다. 노인문화센터에서 복지 상담 프로그램으로 연극커리큘럼을 개발해서 내 사심을 채우고 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딘가 아마추어 연극단을 찾아볼까도 싶었다.
연극이려니 생각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 실제 내 속 캐릭터는 사실 이해심 있고 그러면서도 강단 있고 용감한 염여사라기보다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사실은 겁이 많고 갈등에 쉽게 절망하는 오선숙인 것만 같았다. 적어도 과거의 어떤 부분에서... 분명 그랬다. 어쩌면 아직도 불쑥 그런 모습이 있어서 스스로 놀랄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저 전형적인 중년의 아줌마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줄거리는 어쩌면 전형적이고 예상이 되는 에피소드로 엮어진 이야기이다. 주인 염여사가 잃어버린 파우치를 찾아주는 노숙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어 그녀가 운영하는 서울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에 그를 야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잃어버린 노숙자 독고는 처음에는 서툴고 어눌한 모습에 손님들과 동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만, 독고 특유의 진실되고 따뜻한 경청과 더듬거리지만 진정성 있는 위로가 사람들의 상처를 하나둘 치유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웃들이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독고를 통해 스스로의 아픔을 보듬게 되고 독고 스스로도 삶의 희망을 되찾는 따뜻한 힐링 드라마 내용이다.
소설의 주인공 독고가 편의점을 통해서 만나는 인물 중에서 선숙과의 에피소드를 다룬 "삼각김밥의 용도"편에서 나는 독고가 그 어떤 상담가보다 더욱 훌륭한 상담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선숙의 상처를 치유하고 해결을 돕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그는 적절한 침묵과 경청으로 선숙이 스스로 감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제공했고, 그저 듣고 선숙이 내가 덕분에 속이 좀 풀린다고 하니 보통은 "뭘요..."라고 머쓱해하며 대화로 그칠 수 있었을 텐데 전문상담가도 힘든 기법인 직면(confrontation)의 기법으로 실제로 선숙이 숨기고 싶어 하는 무의식속의 두려움인 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 것에 대한 절망감과 자책감을 짚어주는 상담을 했다.
"겁나셨구나. 아들이.... 아버지처럼 될까 봐."라고 하면서.
더욱이 아들과의 갈등이 고조에 이르러서 자해성으로 아들의 방문을 들이받고 스스로 절망에 빠져있었던 선숙에게 문제를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게 재해석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행동수정 및 과제부여라는 솔루션의 제공으로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닌 행동주의 상담이론에 기반한 과제부여 즉, 삼각김밥과 편지를 전해보라고 제안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주인공 독고...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을 줄 알았고 마음의 통찰을 통해 선숙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포기와 단절이 아니라 회복과 소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베테랑 상담가였다.
요즘 나는 유튜브로 이런저런 상담이론과 기법에 대해 공부중이다. 사실은 공부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고 실상은 검색하고 배운것을 정리해 두는 것이다. 그래도 하다 보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실제로 나도 종종 그렇게 상담을 좀 해왔는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볼 때 이 공부는 내게 정말 잘 맞을 것 같고 앞으로 내가 남은 인생에 있어서 타자와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라는 자부심까지 앞서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심리적 흐름을 보자니 그렇게 '좋은'상담가와는 거리가 멀구나 싶었다.
처음 선숙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 선숙의 캐릭터가 거북하고 이런 아줌마들 때문에 우리 같은 선량한? 아줌마가 같이 싸잡아 욕을 먹지 하는 내심과 나는 아니지요~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고와 마주한 선숙을 보았을 때 내가 독고 앞에 선 선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숙이 직면한 그 순간 나도 그만 책 읽는 호흡을 가다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들과의 극단적이고 히스테리적인 갈등을 뒤로한 채 뛰쳐나온 선숙을 보며 최근 나의 갱년기라고 치부하며 저질렀던 폭발적 감정소동이 떠올라 심란했다.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 어쩌면 저 마음의 지하 100층밑에 감추어두었던 것만 같은 응어리를 토해내듯 소리 지르며 부렸던 악다구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읽다가 순간 주춤했다.
아무도 안 보았기를 바랐건만 남편은 보았고 남편은 독고처럼은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경청과 홀딩 즉 버텨주기를 해주었다. 감정의 안전한 공간을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그 일은 잠잠히 회복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싶었고 문득 나 혼자 있을때면 그날의 나의 모습을 내가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스쳐 지나가고 이내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독고가 선숙에게 직면! 그러니까 "겁나셨구나... 아들이 아버지처럼 될까 봐"라는 말로 전환을 일으킨 그 시점에 나 역시 더 깊은 치유가 시작되었다.
"겁났구나... 네가 엄마처럼 될까 봐"로 들렸다.
그랬다. 나는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엄마이야기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절망과 포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과 그런 과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고가 선숙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숙은 삼각김밥과 편지를 통해 아들과 소통의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가! 나는 상담이 이렇게 한 개인과 그 가정 그리고 그 가정에 함께한 또 다른 개인을 살리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임에 소설과 별개로 감동이 되었다.
살다 보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 댈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그 사실도 인정하고 나면 그렇게 생각했던 것만큼 무시무시하고 절대 회복되지 못할 일도 아닐 때가 많았다. 그러니 모든 것은 삶의 한 과정이고 그렇다면 이 과정이 좋은 결말을 향한 한 걸음이라면 이 또한 내가 나됨을 만들어 가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다.
모처럼 전자책으로 사랑스럽고 따뜻한 소설을 읽게 되어 행복한 하루였다. 다른 에피소드도 하나하나 아름답고 '주르륵' 나도 모르게 눈물도 흘리게 되는 요즘 나에게 보기 드문 진짜 눈물을 선물해 준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내가 문학공부 입문으로 읽고 있는 어느 고전문학 이상의 여운이 남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심리상담학 입문자로서 조금 더 가보자고 용기를 주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그러면 충분히 훌륭하지 아니한가!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에피소드들이 아마도 내가 선택한 선숙의 에피소드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책의 결말은 스포 하고 싶지 않다. 책을 읽도록 꼭 추천한다. 그래서 독고의 정체와 다른 에피소드는 여기서 생략한다. 물론 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래도 궁금증과 그 과정을 모두 직접 읽고 직접 느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줄 수 있는 작은 배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