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작가의 "먹다 듣다 걷다"를 읽고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y 내안의 문학

드디어 도착했다. 갈 곳 없던 차에 마침 모두 출타중인 빈 집이 있어서 신세를 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오기까지 2주간의 나만의 휴가? 같은 시간이 주어져 몇 가지 이런저런 계획을 했지만 솔직히 그중에 독서는 없었다. 그런데 그곳엔 뜻밖의 선물처럼 읽을 책이 몇 권 눈에 띄었다. 빈손으로 온 나로서는 아주 횡재 한 기분이었다.

그중에 단연코 이어령 님의 유작이 되었다는 책이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먹다 듣다 걷다>...' 어! 이런 책이 있네' 하면서 집어 들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일단 정말 단출하고 가벼운 책이라 부담이 없었다. 읽을 거리가 생겨서 낯선 누군가의 집이 순간 편안하고 따뜻하게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소제목부터 내 마음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질문에 나는 그만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되었다.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에게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로 살고있는 내게 건네는 질문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인문학의 대문호인 이어령 작가님! 그분의 노년에 자신이 걷게 된 신앙의 길 끝에 전하는 유언과도 같은 책이라 여겨져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이 세 가지의 동사 '먹다' '듣다' '걷다'를 통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먹다: 생존의 허기를 넘어선 생명의 성찬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첫 구절부터 생명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가 음식을 씹고 삼키는 과정은 타자의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살리는 숭고한 희생의 과정이며, 이는 곧 우리를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성찬'의 확장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탐욕에서 벗어나, 내 안으로 들어온 생명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에너지를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먹는' 행위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과 파괴의 본능인 '타나토스'가 떠올랐다. 처음 배웠을때 약간의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과정 즉, 저작활동을 죽음의 본능 (타나토스)이라고 말한다. 저작활동이야 말로 생명을 파괴하려는 본능(타나토스)과 삶의 본능(에로스)을 채우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본능이라고했다.


어쩌면 이 비극적인 활동인 '먹음'의 과정을 통해 이어령 작가는 오히려 거룩한 생명의 신비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의 생명을 파괴해야만 내 생명이 유지되는 이 역설적인 '먹음'의 과정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가시관선인장 (유포르비아 밀리)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 6:56)

결국 먹는다는 것은 생명의 은혜로 갚아 나가는 숭고한 영적 수행이며, 내 안의 죽음 본능을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로 바꾸는 매일의 예배인 것이다.


듣다: 소음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의 울림작가는 귀가 입과 달리 닫을 수 없는 구조임을 지적하며, 이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 세계의 소리를 수용해야 함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사모하고 열심인지 수없이 보아왔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열망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만 남아버리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나의 목소리를 낮추고 침묵할 때 비로소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라고 말한다.


걷다: 이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순례의 발걸음

때로는 거친 광야를 걷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 초장을 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우리 곁을 지키시는 주님과 '동행'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걸음은 자신을 위한 걸음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걸음이었다. 작가는 교회도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가는 길... 생명으로 가는 변화와 확신의 길이라고 말한다.




"먹다" "듣다" "걷다" 이것은 내가 살면서 가장 나를 벽에 부딪치게 하는 문제들 이었다.

나는 같이 먹는 게 힘들었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게 떨렸고 함께 걷기에는 무력했다.

그래서 많이 울었고 많이 물었다. 거창한 담론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그대로의 이 세 가지 동사는 내게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예수님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내 모습은 늘 제자리처럼 느껴졌다.


걸어 나가지 못하고 늘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숨어있어도 된다고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말해 주었을 때 사실은 많이 안도했다. 때로는 그렇게 위로하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가끔은 힘껏 거들면서 한편 뿌듯해하며 어느정도 면피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의 마음 저 밑에서는 늘 이런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곤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언제쯤 예수님처럼 자유롭게 함께 먹고 함께 듣고 걸으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아쉬운 것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면 어느새 많이 달라져 있음도 무시할 수없음을 떠올려 보았다.


나의 사색이 작가님의 사색과 맞닿은 순간순간마다 많은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작가 이어령 님의 이 책이 유작이 되었다는 것 때문일까? 남겨준 말들 하나하나 나의 손에 쥐어준 나침반 같았다. 일상을 살아가며 그렇게 조심스럽게 용기내어 한 발 한 발 걸어가 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산다는 것이 나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까지 아니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래도 오늘 그 한걸음 뗀 것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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