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바보 이반을 닮은 그녀를 만나다.
레프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이반은 정말 아무리 악마가 그를 괴롭히고 원망하게 하고 이간질하려고 온갖 술수를 다 쓰지만 마치 무슨 보호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모든 술수가 튕겨져 나가고 결코 이반을 흔들 수없었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민화를 소재로 하는 단편이다.
부지런하고 착한 이반은 형들의 탐욕과 악마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간다. 악마는 형제들을 타락시키려 하지만, 계산 없이 남을 돕고 육체노동을 신성시하는 이반의 순수함 앞에 결국 패배한다. 결국 이반은 왕이 된 후에도 ‘손에 굳은살이 박인 자만이 먹을 자격이 있다’는 원칙으로 평화로운 나라를 다스렸다는 게 줄거리이다.
나는 이반을 보며 감동하기 전에
톨스토이가 너무 집착적으로 '농부'에 대한 이상향에 좀 빠져있는 것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이의 소설 중에서 단편은 우화나 민화를 소설로 꾸민 것이라 너무 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가 <부활>이나 <안나 카레리나>를 쓰지 않았다면 그의 필력을 좀 의심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단편집에 나온 몇 편은 정말 오랜 시간 내 생각들을 모으고 사색의 깊은 곳으로 인도해 주곤 했던 감동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물론 그조차 나이가 좀 들어서부터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바보 이반>은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너무 평면적인 이상적인 인물의 등장으로 오히려 요즘세대에 내밀면 사람들이 짜증 낼 것이라고 내심 그렇게 치부했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그 소설 속에나 나올법한, 혹은 내가 살면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바보 이반 같은 사람이 어느새 들어오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그녀를 볼 때마다 두 가지의 마음이 나를 헤집어 놓곤 했었다.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으로 때로는 고개 숙이게 하는 깊은 존경심이. 그렇게 나를 흔들었다. 그녀를 보며 떠오른 한 사람이 바로 '바보 이반'이었다.
멀리서 보면서 인사만 하고 그 '마냥 행복해요'라는 다소 머쓱한 느낌이 있는 사람인 줄은 알았었다. 일로 인해 여러 해 지나며 간간히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눔을 하게 되면서 곁에서 그녀를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작가 톨스토이가 맞았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세상의 이기심에 절여진 나는 그녀를 보면서 처음엔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왜소했고 마르고 가녀린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위로하고,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고, 회복시킨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녀를 만난 모든 이들은 결국 그녀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에 경계심도 반항심도 아픔도 미움도 다 녹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멀리서 바라볼 때 숭고하고 아름다웠지만 가까워져서 곁에서 바라보자니 내가 대신 너무 억울했고 가슴 아팠고 불공평한 것투성이고 공의란 없는 것 같아 무지해 보이기까지 하며 제삼자인 내가 공연히 화가 나곤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리적 경계가 무너져버리곤 해서 나는 당사자보다 더 불편해했다.
현대판 바보이반 같은 아줌마 이야기...
항상 해피한 그녀는 늘 웃는다. 참 바지런히 쉬지 않고 일한다. 그녀의 헌신과 사랑은 언제나 누군가를 살리는 중이었다. 가족들뿐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지나쳐 가며 위로받고 살아났다.
아프고 다친 사람들을 돌봤고, 구직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을 몇 달씩 맡아서 밥을 해먹이고 품어주었다. 부탁은 넘쳐났다. 사춘기 청소년들을 맡아달라고 하는 부탁, 함께 공부시키고 도시락을 싸주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사고로 다친 이의 간병을 부탁받아 간병했고, 이혼한 사람, 우울증에 힘겨워하는 사람, 무서워서 잠 못 자는 사람까지도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는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이건 거의 호구 잡혀 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가끔 못 참고 그 상대들 누군가를 은근히 험담하면서 욕을 하기도 했지만(나는 물론 현실을 직시한 충고를 위한 것이었다!) 바보 이반이 모든 악마의 속삭임에도 굴하지 않은 그것처럼... 좀처럼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와 대화하면서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억지로나 자기 의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짜내고 공들여서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상대가 어떠한 사람인지 구별한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그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었다.
바보 이반이 꼬마 마귀들을 쫓아내면 도리어 축복을 하며 보낸 그것처럼 그녀에게 신은 '일상이자 축복' 그 자체이며,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태도 속에 녹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대화 내내 절대적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사람 같았다. 시류에 따라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이 아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그 사랑이 바로 그렇게 일관되고 한결같은 그녀의 사랑과 태도로 보이는 것이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9절
그리고 또 하나 바보 이반처럼 그녀는 노동의 가치를 알았다. 노동의 숭고함과 그 사랑을 알았다.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일인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였다.
그녀는 그 노동의 귀한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온 인생에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먹이고 나아갈 힘을 주었다.
그녀의 맑은 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세대를 살면서 의심과 회의에 지쳐있던 내게 살아있는 '바보 이반'을 내 눈앞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 이렇게 주어진 대로 내 길을 살다가 부르실 때 그렇게 천국에 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작은 손을 모으며 마치 하나님 앞에 선 소녀처럼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