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안은 헤세의 에세이집에서 위로를 받다.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은 왠지 지난 시절을 떠올려주는 이름 같다.
어리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고민마저도 추억이 되는 느낌이 난다. 나만 그런가?
중학교 때 학교 필독도서라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난다. 끝까지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대학 신입생 오티 때 한 선배가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당연히 아는 이야기를 하듯이 그 유명한"알"을 이야기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헤르만 헤세- 아는척하느라 입 꾹 닫고 묻지도 못했다. 그렇게 부랴부랴 <데미안>을 읽어보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그 시절보다 나의 어눌하고 닫혔있던 어린 시절의 느낌이 기억난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의 삶을 좀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인도 선교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일찌기 받았다고 한다.
인도선교사로는 가지 못했지만 지원했었던 목회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들의 기대를 안고 신학교에 입하했지만 적응하지 못했고 그 시절이 <수레바퀴 아래서>를 만들었다.
이후 아버지의 죽음 아내와 아들의 질병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즈음 반전에 대한 글로 인한 친구 등에게까지 고립되었기에 신경쇠약등으로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때 융의 제자 랑박사에게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 <데미안> 이어서 몇 년 후 <싯다르타> 작품을 남긴다. 노년에 그의 인생이 통찰을 집대성한 <유리알 유희> 작품이후 노벨상을 받았다.
노년에 그는 스위스 몬타뇰라의 집에서 자연과 그림을 벗 삼아 살았다. 그는 인간의 삶을 선과 악으로 쉽게 나누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고통과 부조리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헤세가 마지막으로 그의 평생 사유한 인간의 길이었다.
그의 삶을 만나고 나니 그의 책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한 권 한 권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의 에세이 모음집을 한 권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이다. < 삶을 견디는 기쁨>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가 생전에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의 생각과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 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삶을 견디는 기쁨> 중 '절대 잊지 말라' 중에서
이 책은 삽화가 눈에 뜨인다. 그림은 헤세가 랑박사와 정신분석학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조언을 듣고 시작한 수채화들이었다.
그의 그림은 비록 전문가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글을 쓸 때의 그 강박과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림에서 평온함과 소박함이 묻어 나온다.
그리고 헤세가 부모님의 걱정을 사면서 신학교에서 나오고 시계점에서 서점에서 점원을 하다가 마침내 자신은 시를 쓰겠다고 했다는데 그의 에세이집을 통해서 여러 편의 시들을 보면서 시를 꿈꾸었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 눈에 띈 시가 '절대 잊지 말라'였다. 여러 에세이나 산문, 편지글이 있었지만 시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역시 간결함 때문이었다.
왠지 그의 에세이집을 읽어가면서 스위스 몬타뇰라 그의 집에 그가 여전히 편지나 책을 읽거나 숲을 산책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백 년은 더 되는 시대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책을 많이 읽는 세태를 짚으면서 너무 뒤처진다고 조바심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요즘 세대에게는 sns가 그렇다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라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시? 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아마 당시 정신분석학이 여러 문학과 철학에 아주 영향을 주고받았던 시대인만큼 화제가 되었고 헤세 본인도 심리치료를 오래 받아본 사람이니 이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던 것 같다. 이 시는 전편을 소개해 보고 싶다.
심리학
가재는 새우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짝사랑으로 머물러
무의식의 세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죽음에의 충동으로 바뀌었다.
심리학자가 면밀히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가재가 달아나 버렸다.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리학자는 비록 말은 못 했지만,
가재의 그런 행동에 대해 화가 났다.
그래도 그의 이성적인 머리는
여전히 그 사건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가재는 의사의 도움 없이도 병이 나았고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사는 가재의 고뇌가
돈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가재는 의사의 도움 없이도 병이 나았다는 것과 의사가 가재의 고뇌가 돈에 대한 콤플렉스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서 소리 내서 웃게 되었다.
오랜만에 잡은 손을 놓지않고 한 번에 다 읽은 책이었다. 이야기가 쏟아지듯 내 마음을 적셨다. 때로는 한참을 머무르게 했고, 가끔은 책갈피에 꽂아두고 싶어 적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그의 해학에 웃었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잠깐 조는 정도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나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또한 평생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절대로 사랑할 수없을 것 같다.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중에서
삶을 하나로 볼 수없음과 고통이 얼마나 귀한 삶의 약인지를 말해주었고, 오히려 사랑하라고 했다. 심지어 불면증에 고생하는 이들을 정말이지 딱 맞는 말들로 위로해 주었다.
"어떤 것도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도 없다"는 나의 인생만큼의 지혜를 보태고 읽다보니 그의 글이 더 빛나게 느겼졌다.
헤세에 그리움이 있고 동경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이 에세이집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