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아니지만 삶이 정돈된 에세이를 만나다.
길고 지루할지 모를 비행시간에 함께 해줄 길동무로
몇 권의 책을 고르다가 가벼운? 시집도 한 권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시집이 아니었다!
나는 시인 나태주 님의 시를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너무 간지럽고 오글거린다는 게 솔직한 내 평이었다. 사실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그냥 그렇게 단정 짓고 싶었다는 게 더 정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더 솔직한 이유는...
그를 보면 친정아빠가 떠올라 너무나 시샘이 났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까운 우리 아빠가 생각나서,
꿈을 이루지 못한 아빠가 한없이 불쌍해서, 그랬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아빠의 시간이 나에게까지 회한이 되었나 보다.
'우리 아빠가 훨씬 먼저 멋진 시인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 아빠도 열여섯 살부터 시를 쓰던 시골 문학 소년이었다.
문학지에서 상을 받아 그 산골에서 라디오에 소개가 되던 그날에 얼마나 좋았을지!
우편으로 문학지를 받아보던 날이면 들뜨고 설레어서 시인이 된 것처럼 기뻐했었을 아빠를 상상해 보았다.
아빠는 나무하러 산에 갈 때면 누워 하늘을 보며 김소월님의 시를 읊곤 했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나도 소월의 시와 같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리라' 꿈을 꾸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단명한다는 미신 때문에 학교도 보내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결국 야반도주를 결심한 아빠는 가까스로 서울에서 고생스럽게 자리를 잡으려 애쓰다가
그만 꿈을 펴보지도 못한채 생활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살게 되었단다.
그렇게 꿈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정아빠와 동년배인 시인 나태주 님을 볼 때면 아빠에게는 감추어야 할 비밀인 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진짜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게나 어디로 튈지 모를 공 같다.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시샘과 질투를 받으면서 시까지
때때로 오글거린다고 폄훼받았던 시인 나태주님의 에세이를 마주하면서
마치 이제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책 앞에 내내 있었다.
이 책은 나태주 님의 삶은 시인에겐 교장이라는 게 좋아 보였고
교장에겐 시인이라는 이름이 마냥 부럽기만 한 인생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무력감과 회의감에 힘들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췌장염으로 인해
사선을 넘나들며 오랜 병상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대한 치유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으며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더욱 깨닫게 되었다는 수필이었다.
지루하고 좀 진부한 도덕이 가득한 어느 노 시인의 지나간 병상 극복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오가면서 장례까지 의논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던 가족들! 또한 스스로 삶을 놓지 않고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 가면서 느꼈던 노년의 삶의 통찰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공감되지 않고 너무 개인적이며 비교적 단편적인 글도 있었지만
용기와 위로를 주는 그런 에세이인 것은 맞다.
나는 내내 그분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지나고 보니 그냥 인생이란 게
무엇이 되느냐가 아닌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나태주 시인에게서 또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아주 평범하다는 것이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좀 부족해 보이고 아무 환상도 필요 없는
겉으론 그냥 시골의 학교 소사아저씨 같은 느낌인데 알고 보면 교장선생님 같은^^
그런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번엔 아빠가 떠오르지만 아빠같아서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실 그의 시들이 소박하고 따뜻하며 쉽고 가깝게 느껴졌었나 보다.
새삼 시도 그렇게 어렵고 수사가 가득한 것이 훌륭한 것이 아니란 일반론을 새삼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의 삶이 시인이 아니었어도 그의 삶이 시였고
그의 삶이 소설이었고 그의 인생이 도전과 승리의 서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는 없다.
아니, 원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의미가 있다.
각자 살아낸 그 속에서 겪어낸 아픔과 담담한 견뎌냄으로도 충분하다.
비행기 여행의 지치는 시간을 덕분에 훌쩍 잘 지나갔다.
이번 여행이 지나고 친정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캘리그래피 배우시는 건 어떻게 진척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도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