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서 바라본 결혼에 대한 고찰

결혼 및 결혼문화에 대한 고찰(1화)

* 나는 지금 왜 결혼을 하려고 하고 있는가?


둘이 죽을 만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결혼의 현실인 만큼 남은 평생의 동반자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서로에게 인생의 그 어떤 문제들보다 ‘최고’ 중의 ‘최고’로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 ‘결혼’일 것이다.


지금도 나는 주위에서 가끔 섣부르게 결혼을 하는 철없는 남편이나 철없는 아내를 보게 될 때면 둘이서 어떻게 결혼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둘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겠는지 종종 궁금해질 때가 있다.

둘 사이에 사랑도 없이,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겨서, 부모님께 등을 떠밀려서 결혼을 한 부부들을 보게 될 때면 ‘이렇게 서로 간에 사랑도 없이 원치 않았던 결혼생활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에는 예외도 있는 것이니 그중에서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랑도 없는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으리란 것은 대개의 경우 불 보듯 자명한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번은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힘든 것이 결혼이라면 왜 자신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느냐?”라고 말이다.

냉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그 둘을 이어준 것도, 그 둘에게 결혼을 하라고 강요를 한 것도 아닌 마당에 둘이서 만나 둘이서 결정한 결혼에 대해 제3자인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인터넷에서 ‘결혼과 갈등’에 대한 정도만 찾아보고 이런 부분들만큼이라도 내 스스로가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 심도 있게 생각해 본 후 결혼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았지 않았을까?


‘결혼을 했더니 이럴 줄은 몰랐다,’,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은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이야기이며, 결혼을 하게 되면 반품이나 AS는 받을 수 없는 일임을 명심하도록 하자.

서로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결혼을 해도 부족할 판국에 하나라도 덜 알고 결혼을 했다면 그만큼의 핸디캡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내게도 ‘책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내가 애초에 없었더라면 내가 결혼을 해서 만든 내 가정도 없었으리라.

와이프의 입장에서 보면 나 하나만을 믿고 내 울타리에 들어온 여자이고 자식이 생긴다면 나로 인해 태어난 자식이다. 나로 인해 만들어진 가정이라면 내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의 운전 실수로 인해 교통사고를 발생시켰을 때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죽일 수가 있는 것이듯 나의 잘못된 결혼 선택은 상대방인 배우자의 인생도, 자식(들)의 인생마저도 망가트릴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자.

이 시대의 많은 젊은 남자들이 한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서로가 한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지 않도록 결혼을 선택하기 전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부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내가 결혼 전에 만났었던 여자들과 연애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자문을 해 보았던 것은 ‘과연 내가, 이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서로 사랑하며, 잘 살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스물여섯 나이에 내가 지금의 와이프를 처음 사귄 순간부터 연애시절 동안 나의 와이프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수없이 물어본 끝에 나는 ‘OK!’라는 답과 함께 자신감을 얻었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혼을 하여 대략 20년간 같이 잘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부록 겸으로 결혼 관련 명언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명언들을 남긴 남자들은 각자 살아왔던 시대와 나라가 다르고 저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여자와 기타 여러 가지 다른 환경들 속에서 결혼생활을 했던 남자들이었지만 신기할 만큼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이는 남자가 어떤 시대,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를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처럼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려는 자 또한 그 이름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게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지금 또는 앞으로 곧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면 단순히 둘이서 현재의 ‘사랑’이란 감정만으로 결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결혼하고 살면서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통한 모든 ‘삶의 무게’들을 감당해 낼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결혼 관련 명언들 중 하나를 미리 들려주고 싶다.

결혼 그 자체는 ‘좋다, 나쁘다.’라고 할 수 없다. 결혼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 100세 시대에서 바라본 결혼에 대한 고찰


앞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조금은 무서울 법한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려 한다. 요즘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 ‘서른’에 결혼을 한다고 가정하면 좋든 싫든 둘이서 앞으로 ‘70년’을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이라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30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길었던 세월인지를 회상해 보고 나서 살아온 삶의 두 배가 넘는 ‘앞으로의 70년은 또 얼마나 긴 세월이겠는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 여자가 지금은 아무리 젊고, 늘씬하고, 아름다울지라도 몇십 년 후에까지 그 젊음과, 체형과, 아름다움이 유지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나의 결혼 배우자의 조건으로는 젊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같이 늙어가는 모습을 서로 바라만 보더라도 좋을 만한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 속 대사 중 나의 와이프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녀와 함께 늙어 가고 싶다.’라는 대사이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와이프의 이야기로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장 바라고 듣고 싶어 하는 최고의 말이라고 한다.

과거에서부터 결혼식 서약 중에 항상 나오는 단골 멘트가 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겠는가?”

이 물음에 우리는 모두가 “네!”라고 씩씩하게 답을 하며 결혼을 한다. 단지 지금만 좋고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내 남은 평생을 내가 이 여자와 함께 꾸린 가정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자, 아직 결혼식을 치르지 않았다면 지금 결혼을 하려는 내 여자를 떠올리면서 스스로 한번 더 자문을 해 보자.

‘과연 내가, 이 한 여자와, (70년이 될지도 모르는) 평생을 함께, 서로 사랑하며, 잘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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