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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련 무소주부 May 17. 2023

마누라의 어마무시한 주량

내 마누라 탐구 생활 2화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100일주를 마시기 위해 친구들과 처음으로 호프집에 가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집에 자주 다녔던 친구들은 처음 술을 마시는 나를 놀리기 위해 맥주 3,000cc를 걸고 내기를 하였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나혼자 5,000cc를 마시고 승리를 거두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페스티벌 때에는 당시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는데 나혼자 맥주를 거의 10,000cc에 가까이 마시고 소주도 함께 1.5병을 먹은 적도 있었다.(이때 난 처음 필름이 끊기고 친구들에게 실려서 들어갔다)

그 당시 내 주량은 소주 4~5병이었다.

술로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나였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에는 나보다 술을 잘 마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은 주량이 소주 7~8병이나 되었고 같은 과 '1년 여자 후배'는 건축과 4학년을 통틀어서 술로는 '과톱'이었는데 이 친구에게 한번은 객기를 부려 술로 덤볐다가 죽은 척을 하고 살아남은 적도 있었다.

테이블에 엎어져 자는 척을 하고 있는 내 등을 무섭게 흔들며 선배, 쇼하지 말고 일어나라던 그 무서운 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여자 후배와 부부동반으로 아직 교류를 하고 있지만 어린 나이에 암 치료를 겪고 나서 이후 술은 자중하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겸손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나도 회사에 입사를 하고 첫 회식 자리에서 직장 상사들이 "자네, 술 좀 마실 줄 아나?"라고 묻기도 전에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 붓고 벌컥벌컥 마심으로써 함부로 내게 술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없었던 나였다.

*

서두가 좀 길었지만 이제부터 그 분.. 내 마누라님의 주량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나도 사실 술을 어느정도 마실 줄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밑밥으로 깔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 분.. 이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술에 있어서는 내가 마누라를 우러러 보며 진심으로 존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술 마시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누라를 만나기 전에 내가 결혼하는 여자는 나와 같이 어느정도 술을 마실 줄 아는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의 마누라님은 내가 함부로 범접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술을 잘 마시는 유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장독대 유형'으로 주량이 세지만 주량 이상의 술은 더 마시지 못하고 오버시 잠을 자거나 오바이트를 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밑빠진 독 유형'으로 아무리 술에 취해도 계속 술이 들어가는 유형이다.

전자의 사람은 결코 후자의 사람을 이겨낼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내가 전자, 와이프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몇번을 술로 마누라를 이겨보려 갖은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헛수고일 뿐이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도 않았다.


얼마 전에도 우리 부부가 아끼는 동생네 집에 가서 부부동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와이프들끼리 서로 지고는 못 산다며 술로 배틀이 붙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며 함께 술을 마시던 남편들은 뻗어서 잠이 들게 되었고.. 


새벽 동틀녘에 잠에서 깬 나는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분들은 잠도 한숨 자지 않고 밤새껏 배틀을 진행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참으로 멋진 명승부였다.


오전에 중국집에서 짬뽕, 탕수육까지 시켜서 2차전에 돌입했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기 전, 그 때 마누라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내게 해 준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

"허냐~ 내가 이겼어~ ^0^v"

"그렇구나~ 우리 마누라가 또 이겼구나~"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마누라는 아무런 말없이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뻗어 버렸다.

그렇다. 내 마누라는 이런 분이셨다.

전투력 측정이 불가능한 마누라에게 주량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누구 도전해 볼 의향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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