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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련 무소주부 May 17. 2023

마누라의 음식 솜씨

내 마누라 탐구 생활 3화

나를 만나기 전에 마누라는 자신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밖에는 할 줄 아는 음식이 없다고 했다.


뭐,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0년전 불광동에 살 때부터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줬는데 처음 음식을 만들 때에는 물론 여러 시행착오와 실패를 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남자는 여자가 잘 하고 있다고.. 해주는 음식들이 맛있다고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한다.

나또한 음식 맛이 어떻든, 심지어 돌을 씹더라도 무조건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을 해주었다.

매일같이 내가 먹을.. 또한 둘이서 같이 먹을 음식들을 만들다 보니 부쩍 부쩍 음식 솜씨가 늘어났다.

나야 물론 감사한 일이다.


당시 내가 마누라에게 붙여준 별명은 '우렁각시'였다.

혼자 서울로 올라와 불광동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시절에 배라도 곯을까봐 매일 같이 나의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음식들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마누라가 내게 처음으로 밥상을 차려주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밥상을 받고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밥상이 아니라 술상!!'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즉시 소주를 가져오라 일렀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반주를 곁들이기 시작했던 것이..

그렇게 마누라는 기본적인 반찬들부터 국, 탕, 찌개, 구이, 볶음 등 뭐하나 못 하는 것이 없는 능력자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볶음류는 최고였다.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내가 대학생 시절에 최고로 맛있게 먹었던 뚝배기 불고기 맛과 똑같은 맛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내게는 마치 축복과도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먹어보는 김치적, 팽이버섯 베이컨 말이, 버섯 전골 등 요리의 영역도 다채로와졌다.

이때쯤부터였다. 내 지인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서 집들이를 시작했던 것이..

어느 친구들은 내가 왕처럼 살고 있다며 부러워 했다.

아, 내 잘난 체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어쩔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쓰는 것도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싶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셨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집밥이 아닌 밖에서 사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마누라와 20년을 같이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밖에서 사먹는 것보다 마누라가 해주는 집밥, 아니 집에서 먹고 마시는게 제일 좋다.

사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나로서는 '집밥'이 아니라 '집술'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회사 거래처 장례식장에 다녀오더라도 식사를 거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집술'을 하곤 하는데.. 
이럴 때면 와이프는 내게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오지 그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여자들도 이럴 때는 한 끼 식사 준비를 쉴 수 있으니 남자가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것이 편한 모양이다.


집에 가서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면 치킨이라도 한 마리 포장해 가면 되지 않겠는가?

장례식 자리라는 것이 좋은 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장례식장에 가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식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운전을 해야 하는데 술 권유까지 받게 된다면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만하면 ‘핑계‘와 ‘명분‘이 좋지 않겠는가?



우스게소리지만 자고로 옛말에도 얼굴 이쁜 마누라는 3개월, 몸매 좋은 마누라는 3년, 음식 솜씨 좋은 마누라는 평생 소박 맞지 않는다고 했다.

마누라, 쭉 너여~ 꼭 맛있는거 해줘서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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