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착하게 살겠다고, 건방진 다짐을 해본다.
고등학교 3학년 자습시간에 내가 끄적이던 것은 필기 노트가 아닌 편지였다.
'나 이러이러한 게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는 친구의 고민을 지나치기에 나는 좋게 말해 너무 착했고, 나쁘게 말해 미련했다.
'이런 게 고민이라고? 그 고민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내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정답은 늘 '진심이 담긴 몇 마디 말'이었다. 몇 마디 말을 구두로 전달하기에 나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고,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못했다.
몇 통일까. 나의 무수한 마음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 당시 학급에서 나의 별명은 '천사'... 였고, 나는 늘 양보하고, 뒤로 빠지고, 허허실실 웃어넘기고 마는 사람이었다. 아, 사람들은 이런 무색무취, 그저 그런 사람을 보고 '천사'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착하다'라는 말은 왠지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이 아닌 날 위한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인데 나는 왜 다른 사람만 위로하며 살아왔는지 자책했다. 그런 생각에 얼마간은 우울했고, 그러다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망하고, 오지랖을 부리다가도 금방 지쳐 떨어졌다.
아 편지 지긋지긋하다. 죽어도 안 써. 다짐했다.
그 후로 나의 삶은 나만의 색을 가지고, 존재감을 내뿜는 '천사 같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 남의 마음에 온 신경을 기울이기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살폈고, 나의 색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울증은 조금 가셨고, 나는 예전만큼 편지를 자주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언제 죽을지 생각했다. 만수무강이 꿈이긴 한데,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 착한 사람으로 죽고 싶었다. 어떻게? 뭐가 착한 거지? 고등학교 때 내 모습을 재연해 볼까? 나는 그때 미련했고, 나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지만, 사회가 정의 내리기에 나는 착한 사람이었지. 그래, 과거의 나를 살펴보자.
그게 시작이다. 나는 감히 착하게 죽기로 다짐했다.
내가 만든, 내가 만들어갈 착함의 기준. 나는 오늘부터 매일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 글은 못된 마음이 문득문득 나올 때마다 다시 집어넣고자 나,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 하는 나의 공개적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