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4년 차가 이리 힘드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삶이다. 첫 입사의 설렘은 가신지 오래고, 높은 곳을 바라보기엔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전원이 틱, 틱, 틱.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나의 삶.
요즘 들어 회사가 미운 이유? 말하자면 입이 시원하다(?) 말하고 싶어 죽겠지만 마침표를 찍은 후 남는 묘한 얼얼함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어찌 되었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 그게 지금의 나다.
그럼에도 회사에는 반짝반짝 본연의 빛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강한 사람들 말이다. 울컥, 화가 치밀만한 일에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영웅이 별거인가. 그런 게 영웅 아닐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분노를 가라앉힐 용기를 얻는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의견을 곧잘 말했었다. 선생님이 맞다고 해도, 그 방향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그래도 저는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라고 솜주먹 하나쯤 불끈 쥐고 마는 소녀였다고. 시간이 흘러 나는 스무 살 무렵 우울증에 걸렸었는데, 그때마다 간혹 '서른 살의 언니에게'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썼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는 서른 살은 모든 고민과 시련에도 의연해진 나이라, 그 나이쯤의 나 또한 그런 여성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미친. 그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2년 만에 그 멋있는 여성이 되기는 아무래도 그른 것 같아, 나는 오늘도 스무 살의 어린 학생에게 죄스러워진다. "미안해, 언니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어. 너보다 모르는 것은 더 많고, 너보다 화나는 일도 많지만, 그저 침묵하고 마는 그런 어른이 되었는데. 그런 나라도 괜찮아..?"
이런 사람의 모습을 보면 스무 살의 학생은 무어라 대답해 줄까?
어제 지인과 통화하다 지인이 이런 질문을 했다. "10년 후의 네가 기대하는 너의 모습은 뭐야?" 회사생활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질문이다.
모두의 영웅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영웅은 될 만한 나이겠지.
너무 슬프다 못해 화가 나버린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그의 분노보다는 눈동자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슬픔을 먼저 바라봐주는 사람.
누군가의 숙인 고개 끝 살짝 비어버린 정수리와 뒤틀린 가르마보다, 그 너머 흐르는 눈물을 볼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