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4월에 썼던 글을 다시 퇴고하여 쓴 글입니다.
사월 마지막 주말, 햇살은 곰살맞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봄내음이 묻어난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싱그런 자연을 만나러 서울 근교로 길을 나섰다.
세검정 터에서 홍제천을 따라 천천히 백사실계곡으로 향한다. 길가에 피어난 철쭉과 라일락이 마중 나와 꽃길을 열어준다. 진달래와 벚꽃을 떠나보낸 허전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 세검정 터 :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거사 동지인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짐
현통사 사찰을 지나 5분쯤 걸으니 ‘백사실계곡 생태경관보존구역’이란 팻말이 보인다. 서울 맞나 싶을 정도로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듯 숲길이 오묘하고 고즈넉하다.
백사실계곡은 본래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불렸다. 백악(북악산)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졸졸졸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이끼가 낀 바위도 보이고 버들치도 보인다. 사람의 손이 거의 타지 않은 날 것의 계곡,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시간이 살짝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인왕산 둘레길에 있는 창의문을 지나니, 윤동주문학관이 나타난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이 인왕산 자락 근처에서 하숙했던 인연으로, 이곳에 버려져 있던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문학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가압장(加壓場)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는 시설물을 말한다. 암울한 일본 통치 상황에서 독립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독립운동 의지를 펌프질 하고 다시 결의를 다지고자 했던 시인의 정신과 닮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윤동주의 시는 지금 읽어 봐도 잔잔한 울림이 있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려 할 때마다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마치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것만 같다. 그의 시 ‘자화상’에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자괴하면서도 자신을 매섭게 성찰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시인의 올곧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을 모티브로 제2전시실을 ‘열린 우물’, 제3전시실을 ‘닫힌 우물’이라 명명했다. 참으로 멋진 모티브다. ‘열린 우물’에는 물탱크의 상단을 개방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 하는 중정(中庭)을 만들었다. 또한 ‘닫힌 우물’은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두꺼운 철문이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케 한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제3전시실에서 빈 벽을 향해 쏘아 올린 영상 속 시어들이 하나둘 가슴에 맺힌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왠지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내가 그때의 윤동주 시인이 된 것 같다. 오늘 밤엔 나도 별을 한번 헤어봐야겠다.
‘닫힌 우물‘에서 시인의 일생과 시를 접하고 나서 쳐다본 중정의 하늘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시인이 바라본 하늘은 얼마나 암담했을까. 그런데 오늘 바라본 하늘은 봄날의 뜨거운 햇살을 머금고 더욱 파랗게 빛나고 있다. 어려운 시대상황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독립을 열망했던 시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푸른 하늘도 편하게 볼 수 있으리라. 시인은 없지만 열린 우물 안에 봄바람이 스쳐간다. 오늘 밤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리라‘.
내가 다니던 1980년대 대학시절에도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섰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을 따라 시민들이 합세하며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되었고,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김귀정 등 많은 열사의 희생이 뒤따랐다. 그때는 나도 윤동주 시인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서 시대의 외침에 동참하곤 했다. 뭔가 나라를 위해 작은 목소리나마 보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때의 외침이 있었기에 이만큼의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군사독재를 몰아낼 수 있었고,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한순간도 그 외침을 잊은 적이 없고, 오늘날에도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그때의 울림이 귓가에 메아리치는 듯하다. 가끔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 젊은이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던 정신들을 한 번쯤 기억해 볼 일이다.
문학관 뒤쪽 계단을 따라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시인이 걸었다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인왕산 및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곽에서 바라보니 석파정과 부암동 마을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시인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고향이 그리울 때 이 언덕에 올라 마음을 가다듬었으리라. 오늘따라 시인의 언덕에 비문으로 새겨진 '서시'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일제 강점기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했던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죽을 때까지 부끄럼 없이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시인의 언덕에 올랐을 때 시인이 나에게 나지막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
● 윤동주문학관 정보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
○ 운영시간 : 10:00~18:00(휴게시간 13:30~14:00), 월요일 휴무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70-4531-4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