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대적자의 관점에서
존재명제(Existential proposition)는 끊임없는 질문을 야기합니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철학적 출발점이 된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는 명제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된 근본적인 바탕은 무엇일까요?
창조론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의 바탕이 되는 성경의 창세기는 인간이 본래 하나님과 조화롭게 살아가던 상태였으나,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타락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죄의 시작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고의 변혁을 일으킨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이는 데카르트가 주장한 자기 인식의 출발점으로, 인간이 "존재한다"라는 인식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창 3:7)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원래 창피함을 모르는 야생의 벌거벗은 상태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운명에서 사탄의 유혹을 통해 자아 인식이 가능한 현재의 인간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즉, 사탄의 꾐은 인간에게 선악의 분별과 함께 새로운 자아 인식을 가능하게 한 계기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탄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선악과로 유혹했으나, 이로 인해 인간은 고통과 죄의 존재를 인식하고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삶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으며, 이는 사탄의 유혹이 단순히 악을 행한 결과라기보다는 인간에게 본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었다는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해석은 사탄의 역할을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사탄은 악의 존재로 묘사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는 사탄의 유혹이 인간의 자아 인식과 자유 의지를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수 있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마치 피해야 할 고통이 마조히즘에서 성취감을 동반하는 예처럼, 사탄의 유혹은 인간이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얻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고통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고통은 보통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경험으로 여겨지지만, 마조히즘에서처럼 고통이 쾌감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은 산고(産苦)를 통해 태어나고,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고 더 강해지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Pain is the moment when a human feels their existence most intensely, and through that pain, we com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pleasure most vividly" (Venus in Furs, 2018)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해석은 모든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사탄의 유혹이 인간의 타락을 초래한 죄악으로 간주되며, 그로 인해 인간은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만약 인간이 처음부터 생각할 수 있었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점과, 신약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고려할 때 사탄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한 사탄의 역할을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선악과의 유혹이 단순히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기 인식과 자유 의지,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탄이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어야 하는 운명을 무릅쓰고 인간에게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 의지를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야생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주장하는 악의 존재로서의 사탄과 일치하지 않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탄의 유혹은 인간 존재의 이유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죽음의 고통은 단지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경험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고통과 선악을 경험하면서 자아 인식과 사회적 책임을 배우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은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