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팬티와 붉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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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리 NILI

피 묻은 팬티와 바지를 차가운 물로 손빨래를 하며 반복되는 인생의 모습에 진절머리를 느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기저귀와 비슷한 생리대를 차고 매시간 간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건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니 짐만 더 늘은 기분이다. 빨갛고 생경한 느낌의 혈의 색은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만 한다. 봐도 봐도 거북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거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과거의 난 대낮 길거리 한복판 위에서 하얀 바지에 붉은 장미라도 그리듯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어 다닌 걸 거야라고 예전일을 떠올리며 특정한 사람을 원망했다. 그래봤자 남는 건 식도로 넘긴 고구마가 가슴에 들어앉았나 싶은 답답함과 증대된 불행함이었다. 이젠 더 볼 수 없는 사람을 원망하는 내 꼴에서 쓰레기보다도 더한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게 분명했고 식탁에 쌓인 라면용기에서 날파리가 쏘다니다 나의 얼굴로 돌진했다. 죽어가는 음식 주변에 기생하는 날파리인데 내가 먹음직스러웠구나 했다.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인 게 분명하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으니 저기 저렇게 삭아가는 라면찌꺼기와 나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갑자기 음식물쓰레기가 버리고 싶어졌다. 켜켜이 쌓인 라면용기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1층에 살아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웃의 얼굴을 억지로 보지 않아도 돼서 잠깐 기분이 좋았다. 분리수거장의 음식물쓰레기통은 전자식으로 바뀌어있었다. 동호수를 입력하고 비밀번호까지 입력하는 최신시스템이었다. 비밀번호를 설정하라는 통지서는 본 적이 없다. 아마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있을 것이다. 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 해서 0000부터 시작해서 나의 생일을 입력해 보았다. 다 틀렸다. 혹시 몰라 엄마의 휴대폰 뒷자리를 입력했고 음식물쓰레기통이 입을 열었다. 나는 벙쪘고, 지하에서 올라오는 듯한 썩은내가 코를 찌른 순간 정신을 다잡고 라면찌꺼기를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엄마의 집이다. 엄마는 약 일 년 전 돌아가셨고 현재는 언니 명의로 바뀌었다. 사실 나는 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언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언니와 나는 서로 없는 듯이 서로를 대하며 한 집에서 먹고 자고 있다.

나는 언니를 생각하면 분하다. 같은 핏줄인 언니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분하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언니는 뭐가 잘났길래 저렇게 보통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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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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