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방

03

by 니리 NILI

나만 왜 이리 만신창이인지 그런 나를 왜 방치하듯 외면하는지 알 수 없다. 주고받는 무신경함은 우리의 관계를 하나하나 죽여가는 건 분명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후 더러워진 손이 나를 부르듯 움찔거렸다. 마치 깊어진 생각에서 탈출하라는 몸의 신호 같았다. 손을 씻어도 손끝에서 썩은내가 맡아진다. 진짜 악취 나는 몸이 돼버렸다. 상관없다. 이런 것은 내일 되면 사라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머지않아 아랫배가 쥐어짜지는 통증이 나를 깨웠다. 아참, 나 생리 중이었지. 집 안을 뒤져봐도 그 흔한 진통제가 하나 없다. 물론 내가 뒤지는 그 집 안의 반경은 언니 방을 제외하고다. 언니 방에는 왠지 진통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배가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언니 방에 들어가서 약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을 열으려는 순간 긴장이 몰아쳤다. 약 일 년 만에 보게 될 언니의 방이다.

달라진 건 없었다. 깔끔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언니 냄새가 난다. 항상 언니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 조금은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이 냄새를 맡으니 옛날 기억이 올라온다. 멋모르던 시절, 해맑게 장난치며 놀던 때가.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게 하면 방금 떠올린 생각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말이다.

아무래도 주인 없는 방에 들어와 서랍을 뒤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시 나가려던 찰나, 책상에 펼쳐진 노트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 살고 싶다 ‘

별로 충격적이진 않다. 나도 같이 사는 게 행복하진 않으니까. 다만 상태가 좋지 않은 나를 정말로 손에서 놓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돼서 내게 정말 관심이 없구나 정도는 알게 됐다. 잘 됐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이리도 쉽게 속내를 보게 돼서.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어딘가 현실감각이 돌아온다. 언니와 나의 관계성을 떠올리자니 머리가 아파오지만 배까지 아픈데 머리까지 아플 순 없다고 생각을 잠시 미룬다. 이렇게 또 우리의 관계는 곪는다. 알지만 나도 너무 잘 알지만 항상 피하기만 하는 상대방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오늘도 우리 관계의 진물을 지켜보기만 한다. 잠깐 잠들었을까, 어두워진 방과 그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 언니다. 언니가 왔다. 심장이 뛰었다. 방에서 손끝하나 건든 것은 없지만 발자국은 남겼기에.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다. 방 문을 열었다.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다.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일 텐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래서 불러봤다. “언니”

돌아보는 얼굴에는 표정 없는 눈코입이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언니를 부르는 순간에도 애초에 할 말은 없었고 그냥 불러보고 싶었다. 반응이 있다면 대화가 오고 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건 너무 큰 기대였으려나,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을 마시고서는 “뭐”라고 대답한다. 내가 말을 건지 한참이나 지난 뒤에, 그래도 대꾸를 하긴 했다. 그렇게 각자의 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우리가 공생할 수 있을까, 아니고서는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데 그거는 너무 싫다. 나는 집 안에서의 행복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기본도 안돼있으니 한숨만 푹푹 쉬다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다. 작은 행동, 말씨 하나에도 성이 쉽게 나버리는 예민한 성질의 언니이다. 뭐가 그리 쌓인 게 많고 해소되지 못했길래 저러고 있을까 싶다. 어린아이라면 삐진 모습일 텐데 다 큰 성인이라서 그 모습보다는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성난 사람의 모습일 뿐이다. 괜히 내가 그 부분을 풀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나의 강한 책임감 탓인지, 오지랖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사실은 언니의 그런 부분을 건들다가 우리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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