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 컴퓨터 진돗개를 아시나요
애니메이터로 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우리 부서에 선배들이 단체로 이직을 하는 일이 있었다.
이제 갓 신인티를 벗고 그리는 만큼 돈도 벌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쯤이었다.
선배들이 나갔다는 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나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일반 정규직이라면 싫을 일이지만 프리랜서인 우리들은 일이 많을수록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였기에 어찌 보면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선배들이 나간 후 스케줄 급하고 돈이 되는 그림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다행히 나는 손이 빨랐다. 그렇게 몇 달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리니, 금세 통장은 두둑해졌지만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참을 수 없는 건 똑같은 그림을 몇백 장씩 그리는 게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어느새 매너리즘이라는 녀석이 찾아왔고, 어릴 때부터 고질병인 '가벼운 엉덩이 병'이 도졌다. 슬슬 새로운 무언가를 벌려야 할 때인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안정적인 공장의 부속품보다는, 나름의 색이 있는 폼나는 부속품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쯤 예전 3D애니메이션 학원에 같이 다니던 선배가 봉천동에 집을 얻고 작업실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당시 회사가 신림동쪽이었기에 가깝기도 하고 무언가 이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비싼 학원비로 학원을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3D로 만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좋아 보였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연필과 지우개로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리고 연결 짓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앞으로 더 잘 나가려면 컴퓨터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드디어 첫 컴퓨터를 사게 된다.
1990년대 처음 나온 조립 PC 브랜드 세진 컴퓨터. 진돗개처럼 평생 충성스러운 AS와 관리를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거금 이백만 원을 들여 산 컴퓨터였다. 봉천동에 작은 작업실은 마련되었지만 연필로 그린 그림을 영상화하려면 카메라며 스캐너등 다양한 고가 장비가 필요했는데, 신문물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개인이 비싼 장비 없이도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퇴근 후 작은 옥탑방에 모이기 시작했다.
퇴근 후 하나둘 모이면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모여 앉아 어떤 스토리를 만들지, 어떤 캐릭터를 그릴지 회의를 했다. 물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진행도 더뎠지만 그래도 조금씩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6개월 후 짧은 단편을 완성한 우리는 목소리까지 녹음하며 마지막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출품 후 본선진출과 특별상 수상이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진짜 기뻤다. 우리에겐 시상식 티켓이 주어졌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고 단상에 올라가는 영광이 주어졌다. 열심히 한 후 결과가 좋아 무언가 자랑스러운 기분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기였다. 앞으로도 계속 창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작업실 운영을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함께하는 공동작업이라는 게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피곤했었나 보다. 작업실에서 컴퓨터를 철수해 집으로 가져오면서 나는 다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 그런 의지력이 쉽게 생기겠는가.... 마음만 가득하고 실행에 옮기는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진돗개 컴퓨터는 작은 방에 모셔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