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회사에서, 천둥과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by 김창순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기질이 그렇다. 열심히 살고, 돈을 많이 버는 인생보다는 적당히 즐겁고 재밌게, 나만의 일을 하는 걸 좋아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보다 나 스스로 즐거운 걸 찾는 게 먼저인 사람.


호텔에서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 조회시간 레스토랑의 특성상 캡틴부터(지배인 역할을 하시는 분을 캡틴이라고 불렀다) 홀 직원 룸 직원 선배부터 맨 밑 딜리버리까지 한 줄로 늘어서 총지배인님 주최하에 아침 회의를 한다.

아침 회의를 위해 조용한 로비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너무 평온하고, 앞으로 이렇게 쭉 익숙한 느낌으로 이 직장을 다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난 항상 언젠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고 그 일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식당 딜리버리일이 편안해 지다니.


그날은 하루 종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주방에서 홀까지 열심히 뛰어다녀도, 주방장님의 호통을 들어도... 그리고 오후 퇴근을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주방 구석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캡틴님이 달려왔고, 어디 아프냐며 위로를 하셨다. 난 직원휴게실에서 조용히 누워 왜 흐르는지도 모를 눈물을 쏟았다.


아직도 그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퇴근 후 거실 티브이 앞에 뭔가 사연 있는 얼굴로 누워있는 나와 딸의 얼굴을 살피는 엄마의 침묵의 시간이.

엄마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매달 월급을 드리는 게 기분 좋았다. 정규직 딸로 어느 호텔 직원으로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난 내가 더 중요하니까.


그 길로 호텔을 그만두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그리고 1년 치 퇴직금과 월급 모두 엄마에게 드리고(엄마의 실망감을 그렇게라도 보상해 드리고 싶었다)

언니에게 학원비를 빌려 이대 앞에 있는 3D 애니메이션 학원에 등록했다. 오후에는 알바를 하고 오전에 다니는 학원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비싼 학원비에 1년 정도 과정을 마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 학원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손으로 그리는 수업을 먼저 하고, 그다음 컴퓨터 수업을 진행했는데 수작업을 가르쳐주러 오시는 선생님은 현직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시는 야구모자를 눌러쓴 다정하고 섬세한 남자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가끔 우리의 넋두리를 들어주시기도 하는 분이셨다. 그때 아마 나는 학원비와 아르바이트의 어려움을 토로했나 보다. 선생님은 그 당시 자신이 알던 애니메이션 회사를 소개해주시며 그곳에서 알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렇게 애니메이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회사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였고 정규직이 아니었으며, 그린 만큼 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처음에 내가 그린 그림들은 쓸 수 없는 연습작이었고, 돈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2-3달 거의 차비 정도만 받으며 일을 하게 됐고, 결국 비싼 학원비를 내는 학원은 때려치우고 애니메이션 회사를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다. 그렇게 신인시절을(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처음 입사해서 연차가 되기까지 신인이라고 불렀다)

배고프고 힘들게 다녔지만 즐거웠다. 뭐 대단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무언가 그리고 지우고 하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그리고 어느 천둥 치는 밤 밤샘 작업을 하며, 헤비메탈을 틀고 주변 애니메이터들과 라면을 끓여먹으며 귀신 스토리로 잠을 쫓는 베테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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