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애니메이션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여전히 새로운 걸 그리고 창작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전원이 꺼져있는 컴퓨터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다가오는 21세기 새로운 2000년에 흥분하고 있었고 '휴거'라는 종말론이 떠돌며, 우리는 모두 죽거나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에 초흥분상태였다.
그리고 회사 근처 입시 학원에 등록하고 퇴근 후, 혹은 주말마다 실기 연습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단 몇 달 연습으로 입시에 붙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도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시험장에 들어가 다른 학생들 그리는 걸 봤다는데 만족했다. 그리고 당연히 불합격! 좌절감에 빠지기엔 공부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내가 사는 곳은 중곡동. 근처 군자동에 세종대학교가 있었다. 그곳엔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있었는데 꽤 알아주는 곳이었다. 지나칠 때마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날 네이버 검색란에 세종사이버대학이 오픈했고 입학생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다행히 자격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포트폴리오와 면접으로 입학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어차피 회사생활도 해야 하니 잘됐다는 마음과 놀고 있는 진돗개(컴퓨터)를 활용해 전국 각지의 학우들과 만나보자 라는 생각에 입학신청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그 당시로는 처음 생긴 온라인 학교라는 것 등 여러 가지 불안요소들이 있었지만, 뭐 어떤가 이제 진돗개는 방구석에서 벗어났다!!
첫 학기, 설레는 마음으로 온라인에 접속했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교안도 다운로드하고 과제도 해서 제출하고, 학우들과 동아리도 만들고 신나게 한 학기를 마쳤다. 그리고 성적은 거의 올 a+ 하하....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니!! 나는 그해 1학년 중 장학생이 되어 본교로 상을 받으러 갔고, 화면으로 보던 교수님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인연이 닿아 교수님의 조교로 일하게 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사이버 대학이지만 우리는 실습을 해야 하는 학과이다 보니 실습실이 있었다. 실습실엔 촬영장비와 컴퓨터 몇 대, 그리고 태블릿(그림 그리는 펜마우스)이 있었고, 학생들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조별 과제를 해야 하거나 교수님 워크숍이 있는 경우 실습실에서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관리를 조교인 내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매달 아주 소액의 월급을 받게 된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학과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곳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입학했다. 현직 사진작가부터, 만화가, 회사원, 애니메이션 작가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물론 일반고를 거쳐 바로 들어온 학생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뭔가 뜻이 맞는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실습실은 매일 북적이는 장소가 되었다. 각종 공모전에 참여하고, 아트페어에 나가기 위한 준비 장소가 되었으며, 실습 조교인 나는 그 중심에서 재학생들과 신입생, 사회생활하는 중견학우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