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오후, 볼일이 있어 회사에 연차를 사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매우 덥고 습한 여름의 한가운데서, 등에 땀을 흘리며 서면역 플랫폼에서 노포 방향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전동휠체어를 탄 할아버지, 등산복을 입은 노년의 남녀들이 보였다. 다른 젊은 사람들이 있는지 두리번거렸지만, 이 넓은 역에서 젊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노인들 사이에서 불안감을 안고 열차를 계속 기다렸다.
기다리던 열차가 도착했고, 냉장고 같은 시원한 객실에 탔다. 열차를 타고 땀을 식히며 주변을 보니, 열차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인이었다. 역 플랫폼에서 느꼈던 기시감을 다시 느꼈다. 적막하고 고독한 분위기의 객실은 다음 역에서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유모차와 함께 탑승하자, 앉아 있던 노인들의 시선이 모녀에게로 집중되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며 말을 걸기도 하고,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열차는 황혼들을 싣고 달려갔다.
한 달 전에 방문했던 서울의 기억과는 매우 상반되는 장면이었다. 서울에는 1박 2일로 성수동과 용산, 여의도 등을 여행했는데, 지하철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거리와 상점에도 20~30대가 넘실거렸다. 젊음의 물결을 보며 서울의 생동감과 역동성을 느꼈지만, 부산에서는 노인들로 가득하고 쓸쓸하고 휑한 분위기를 느꼈다. 부산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서면에서도 이런 상황을 보니, 내가 태어나고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비애감이 들었다.
부산은 1980년대 이후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면서 동명그룹과 국제그룹이 사라지고, 대기업이 없어진 이후 신발과 섬유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이 쇠퇴했다. 1997년 IMF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남아 있던 우량기업들도 무너지거나 수도권으로 옮겨갔다.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청년들도 사라졌다. 나는 운 좋게 부산에 남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을 떠났다. 떠난 친구들은 부산을 그리워하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이렇게 노인들만 남은 도시를 누군가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말했고, 그것이 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노인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늙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경험을 쌓고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기준과 울타리를 정하게 되고, 생각이 견고해진다. 그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생체리듬에 따라 활력이 떨어지고 신체의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노화가 진행되어 조심스러워진다.
과거 6.25 전쟁의 피난민들과 경공업 중심의 급격한 발전을 이룬 부산은 부마항쟁의 첫 발자국부터 많은 기업들의 창업으로 생명력을 보였으나, 지금은 젊은이들이 떠나고 인구 구성이 노인들로 이루어져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도전하기 쉽지 않고, 고요하게 정체되고 침잠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며 부산에 살면서 다른 지역의 친구들보다 시도하지 않는 삶과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방향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빨리 청춘의 도전과 활력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막한 지하철에서 노인들 사이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나오는 바다에서 투쟁하는 삶을 사는 노인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