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 중 공항에 대하여
이곳은 기대와 불안,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장소다. 트렁크를 끌고 체크인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딘가에 다다를 설렘과 그곳에서 느낄 피로가 섞여 있다. 8월 중순, 2주 동안 덴마크와 노르웨이로 여행을 하며 여러 공항을 거쳤다. 직항이 없는 여정이었기에 몇 차례 경유를 거쳐야 했고, 각 도시로 이동하는 교통수단까지 포함하면 인천, 두바이, 오슬로, 코펜하겐, 베르겐 등 다섯 곳의 공항을 경험했다. 공항은 그 기능이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각 나라의 색채가 드러난다.
인천공항은 단정하고 실용적인 느낌이 강했다. 서울역과 유사한 시설과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바로 연결되는 1터미널은 무채색을 기본으로 한 깔끔한 공간이었다. 물론,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이 더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인천공항은 아시아 허브공항을 목표로 하기에 김해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면세점도 다양했다. 하지만 밤 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탓에, 그 시간에 문을 연 음식점이나 면세점이 없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두바이 공항은 인천에서 밤 12시에 출발해 현지 시간 새벽 4시쯤 도착했지만, 그곳은 24시간 내내 활기가 넘쳤다. 첫인상은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시설과 화려한 면세점이었다. 바깥 온도는 50도를 넘는 사막이었지만, 실내는 너무 시원해 오히려 추울 정도였다. 금색 포인트를 사용한 디자인과 롤렉스 시계가 공항 곳곳에 배치된 것을 보며, 아랍에미리트의 오일머니를 실감했다. 이 공항은 관광과 항공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강력히 지원한 결과로 탄생한 듯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라운지를 이용하려 했지만, 공항이 워낙 넓어 원하는 라운지에 가기까지 30분 가까이 걸렸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면서, 그들의 재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최신식 항공기와 중동 특유의 황금 포인트를 강조한 비행기는 그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기내에서는 최신 영화와 드라마를 한국어로 감상할 수 있었고, 이착륙 순간을 기체 위에 장착된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기내식도 몇 시간마다 제공되어 마치 ‘비행기 안에서 사육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승무원들은 모두 젊고 과도할 정도로 친절했으며, 북유럽의 SAS 항공에서 만난 듬직한 형, 누나 같은 승무원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두바이를 거쳐 도착한 오슬로 공항은 북유럽 특유의 감성을 잘 담아낸 공간이었다. 바닥과 천장을 나무로 마감한 건물은 다른 공항과는 차별화된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인천과 두바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였고, 터미널이 하나뿐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면세점에는 노르웨이 연어, 무민 캐릭터, 사슴 무스 인형, 노르웨이 국기를 장식한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두바이의 면세점이 세계 각국의 명품으로 가득 찼다면, 오슬로 공항은 자국의 특산품으로 가득했다.
오슬로를 지나 도착한 코펜하겐 공항은 또 다른 북유럽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블랙 컬러를 바탕으로 세련된 폰트와 간접 조명을 활용한 디자인은 오슬로보다 더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줬다. 덴마크가 디자인의 나라라는 점을 공항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국기를 매우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하는지 모르겠지만 공항 내에서는 노르웨이처럼 덴마크의 국기를 장식한 기념품이 많이 보였다. 또한 ‘휘게’의 나라답게 휘게와 행복을 강조하는 책과 기념품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휘게와 행복을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은 생각이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베르겐 공항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로, 한국의 부산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도시의 공항이었다. 첫인상은 당황스러웠다. 비행기는 매우 작아서 좌석이 고속버스처럼 2인씩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착륙할 때는 연결통로가 아닌 활주로를 걸어서 공항에 들어갔다. 공항 자체도 매우 소박했고, 한산한 공항 정문에 "베르겐?"이라는 간판이 있어 "베르겐에 왜 왔니?"라고 묻는 듯해 혼자 피식 웃었다.
이렇게 다양한 공항을 거치며 여행하면서, 공항만으로도 그 나라와 도시의 분위기, 문화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떠나고, 도착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 설렘의 장소에서 우리는 모두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며 기묘한 흥분을 안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다음 공항 방문을 기대하며 그날을 기다린다.
당신은 언제 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