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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드 Sep 08. 2024

맥주를 마시면서 드는 생각

내가 만드는 맥주 '미남맥주'

붉고 향기로운 맥주를 마시며 히비스커스, 씁쓸한 홉, 그리고 맥아의 향이 입안에 머물다 사라진다. 적당히 시원한 온도와 함께 청량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탄산 때문일까? 이번 맥주는 꽤나 성공적이라고 자축하며 마신다. 맥주 만들기를 시작한 건 약 5년 전이었다. 당시 수제맥주 제조가 유행이었는데, 맥주를 그저 마시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재미있고 특별해 보였다. 인터넷에서 맥주 키트를 발견하자마자 주문했다.


맥주 키트는 30리터짜리 커다란 플라스틱 통, 젓는 막대, 비중 측정기, 온도 측정 스티커 등의 도구와 맥아 농축액, 효모, 홉, 맥주병, 그리고 탄산을 만드는 설탕덩어리 등의 재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 주문해서 집으로 받았을 때, 엄청나게 큰 박스들에 놀랐고 집에 들여놓자마자 부모님께 호된 꾸중을 들었다. 거대한 맥주 키트로 맥주를 만든다는 건 처음부터 예상보다 힘든 일이었다. 요즘엔 LG에서 수제맥주 제조기가 나오는 등 더 발전된 맥주 기계들이 많이 보인다.


맥주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1. 맥아 추출 원액과 물 20리터 정도를 넣고 열심히 젓는다. 맥아 원액은 끈적한 당화 성분으로, 엿기름 같은 느낌이다. 넣을 때는 한 번 뜨겁게 데워야 물에 잘 녹는다.

2. 물에 다 녹으면 이스트를 넣고 원하는 홉과 함께 밀봉한 후, 서늘한 곳에서 약 한 달간 1차 발효한다.

3.1차 발효 후, 병에 탄산을 만들기 위한 설탕덩어리(탄산캡슐)와 함께 옮겨 담은 뒤 2차 발효를 또 한 달 정도 한다.

이것으로 끝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만드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지만, 내게 맞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맥주의 향을 더 강화하려고 다양한 홉을 시도했고, 차 잎을 우려 넣어보기도 했으며, 레몬, 자몽, 오렌지 같은 과일도 실험해봤다. 흑맥주엔 커피도 넣어보고, 더 강한 맥주를 위해 위스키로 알코올 도수를 높여보기도 했다. 성공도, 실패도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정착한 레시피는 히비스커스 잎차와 홉 2종류의 조합이었다. 원액으로는 IPA나 페일 에일이 향긋하고 씁쓸한 맛을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아무래도 내 맥주 취향은 시트러스 향이 나고 탄산감 있는 빅웨이브 같은 맥주인가 보다.


맥주를 만들고 보니 30리터나 되는 양을 혼자 마시기엔 너무 많아서,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고 함께 마셨다. 재미 삼아 꽤 정성을 들여 맥주 라벨을 만들고 간단한 그림을 그려 브랜드도 만들었다. 당시 화명동에 살아서 처음엔 '화명맥주'라고 이름 짓고 나눠줬고, 지금은 미남에 살아서 '미남맥주'라는 이름으로 라벨을 붙여 나눠주고 있다. '미남맥주'라는 이름 때문에 중의적 표현 아니냐며 놀림도 받는다...


이렇게 맥주를 만들어 나눠주면서 많은 모임에서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맥주를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다 보니 정작 내가 마실 맥주가 없는 기이한 상황도 있었지만,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눠주는 것을 즐기며 함께하는 분위기와 그때의 젊음을 만끽했다.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19 시대가 찾아와 사람들과의 만남이 불가능해졌고, 그동안 유지해오던 모임들이 중단되어 맥주를 나눠줄 수 없게 됐다. 맥주 만드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어 코로나 시기 3년 동안은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만들어 혼자 음미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작년과 올해, 예전처럼 맥주를 만들어 나눠주려 했지만 함께했던 이들과의 관계는 이미 희미해졌고, 코로나가 남긴 관계의 상흔으로 인해 미남맥주는 냉장고에 덩그러니 사람을 기다리게 됐다. 이렇게 코로나가 남긴 관계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오늘도 미남맥주를 마시며 희미해진 사람들과, 그때의 온기, 분위기 등 짧았던 한여름 밤과 같은 추억들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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