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를 읽고

by 쥬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시간을 접고, 말로 못하는 것들을 대신 말해주는 장치다. 주인공들은 필요할 때마다 설명을 길게 하지 않는다. 대신 건반 위에서 감정이 먼저 도착한다. 그러고 나면 사람은 그제야 “아,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자각한다.


물론 나는 영화처럼 피아노로 시간여행을 하진 못한다. 나의 현실은 훨씬 더 소박하다. 시간은 늘 한 방향으로만 가고, 그 끝에는 대개 마감이 있다. 하지만 음악이 나를 ‘어떤 상태’로 데려가는 경험만큼은, 꽤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나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 히사이시 조의 콘서트 실황을 몇 시간짜리로 틀어놓는다. 짧은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라, 진짜로 몇 시간짜리. 이건 음악 감상이 아니라 사실상 “집중력 환경 구축”이다. 누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나는 대개 “그냥 집중이 잘 돼서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 말은 항상 빈약하다. 내 집중력의 원리를 설명하기엔 너무 짧고, 너무 어른스럽게 포장된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이유를 나도 정확히 말로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를 읽으면서, 그 ‘말할 수 없던’ 영역에 자막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명곡은 뇌를 방해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다. 이 문장이 내 습관을 거의 정답처럼 설명해 줬다. 우리는 흔히 음악을 “감정을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음악은 감정을 과하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정돈한다. 앞에 튀어나와 일을 방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라져서 공허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딱 그 중간에서—뇌가 일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준다.


히사이시 조가 그런 음악을 지향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가 히사이시 조를 켜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 뇌가 “좋아, 이제 일할 준비 됐어”라고 말하게 만드는 일종의 스위치였던 셈이다. 나에게 히사이시 조는 배경음이 아니라, 업무 시작 버튼이다. (사실 회사에서도 버튼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업무모드’ 되는 기능 좀 도입해 줬으면 좋겠다.)


책이 재미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읽다 보면 정말 수다쟁이 아저씨 둘이 카페에서 떠드는 것 같다. 음악 얘기하다가 뇌과학으로 새고, 곤충 이야기까지 갔다가, “아무튼” 하면서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지금 곤충이 왜 나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그 샛길들이 본론으로 합류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건 하나다. 이 사람들은 잡학다식하고, 무엇보다 음악을 ‘취향’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으로 보고 있구나.


책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지점은, 음악이 단지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은 언제나 상황과 함께 저장되고, 감정과 함께 재생된다. 같은 곡을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별 다음날 듣는 사랑 노래는 똑같은 음인데도 유난히 절절하고, 큰 시험을 앞두고 희망적인 음악을 들으면 괜히 어깨가 펴진다. 음악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뀐 것이다.


결국 음악은 악보 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을 들은 사람의 삶 속에서 개인적으로 변형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곡이 추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각오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그때의 공기”가 된다. 그러니까 음악은 사실상 ‘나만의 경험이 덧칠된 기록물’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청각의 영향력이다. 책을 읽으며 “아, 그래서 음악이 은근히 무섭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생각보다 잘 닫히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은 내 허락을 굳이 받지 않고 스며든다. 기분을 바꾸고, 속도를 바꾸고, 집중의 방향을 살짝 틀어버린다. 나는 내가 ‘결정’해서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내 무의식이 이미 많은 것을 정해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의식 옆에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음악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그 ‘원래’에는 음악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내 인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BGM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내 BGM은 꽤 성실했다.)


그래서 나는 ‘왜 우리는 음악을 듣는가’라는 질문을 조금 현실적으로 다시 보게 됐다. 음악을 듣는 건 단지 즐거움이나 취미가 아니라, 어떤 때는 나를 다루기 위한 기술이다. 지친 날엔 마음을 대신 울어주는 음악이 필요하고, 무너질 것 같은 날엔 나를 붙잡아주는 리듬이 필요하다. 집중이 필요한 날엔 뇌를 방해하지 않는 명곡이 필요하다.


나는 일을 하려고 히사이시 조를 틀어놓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음악으로 내 상태를 먼저 맞추고 있었다. 집중은 ‘의지로 힘껏 누르는 것’이라기보다, 집중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가깝다. 그리고 나는 그 환경을 음악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제목이 다시 의미를 갖는다. 내 비밀은 영화처럼 시간을 넘나드는 비밀이 아니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비밀이다. 음악이 내 뇌의 잡음을 줄이고, 감정의 온도를 맞추고, 나를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데려간다는 것. 그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정교해서, 대개 우리는 그냥 “좋아서”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알겠다. 내가 말로 설명하지 못했던 건 신비로운 비밀 때문이 아니라, 그 비밀이 너무 일상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익숙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것. 설명하려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것.


책을 덮은 뒤에도 나는 히사이시 조 콘서트를 틀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시간이 단지 배경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조율하는 방식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이걸 알게 된 이상, 예전처럼 무심하게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음악은 여전히 말이 없지만, 나는 그 침묵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물론, 완벽히 다 말할 수는 없다.

그게 음악의 방식이니까.

그리고… 내 집중력의 비밀도 결국은, 말이 아니라 ‘재생 버튼’에 더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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