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인을 읽고..
서태지의 노래 중에 「환상 속의 그대」가 있다.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나는 그런 우연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우리는 흔히 “내가 결정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브레인』은 그 문장을 조용히 흔든다. 뇌는 한 사람의 왕이 아니다. 작은 위원회에 가깝다. 서로 다른 부서들이 각자의 안건을 들고 들어온다. 회의는 진행되고, 결론은 나기도 한다. 그리고 의식이라는 비서가 뒤늦게 회의록을 정리한다.
가끔은 결론이 먼저 나온다. 이유는 나중에 붙는다. 나는 그 이유를 ‘나’라고 착각한다.
책은 그 착각을 여러 장면으로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행동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그럴듯한 설명을 붙인다. 설명은 매끄럽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하지만 사실은 뒤늦게 발명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일 비슷한 일을 한다.
기억도 그렇다. 저장된 파일을 꺼내는 게 아니라, 열 때마다 다시 렌더링한다. 그래서 확신에 찬 기억이 꼭 정확한 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은 편집의 결과물일 때가 많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편집본을 원본보다 더 믿는다.
또 하나. 뇌는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라 계속 바뀌는 기관이다.
새로운 감각 입력에 적응하고, 기능을 재배치하고, 익숙해지는 과정. 결함이나 상실이 생겨도 뇌는 다른 길을 찾는다. 그게 인간의 단단함이다. 동시에 그 단단함은 “나는 고정된 나”라는 믿음을 약하게 만든다.
내 성격과 취향, 판단은 생각보다 쉽게 업데이트된다. 어떤 날의 피로, 관계의 긴장, 작은 성공과 실패가 내 안쪽의 배치를 바꾼다. 나는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이쯤 되면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그들은 시뮬레이션을 현실로 믿는다. 감각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뇌가 재구성한 세계를 본다. 뇌는 예측하고, 빈칸을 메우고, 필요한 것만 강조한다. 그래서 ‘현실’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안에서도 만들어진다.
내가 보고 있다고 믿는 장면의 일부는, 사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은 조금 서늘하다. 하지만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하루를 통과한다.
그리고 지금은 AI와 로봇이 그 “현실 생산”의 과정에 끼어들고 있다.
요약은 AI가 한다. 초안도 AI가 쓴다. 추천은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대신 말해준다. 편해졌다. 그런데 마음은 꼭 가벼워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AI는 결정을 잘할 수 있어도, 그 결정을 살아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결과를 몸으로 겪는다. 심장이 빨라지고, 잠이 얕아지고,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뇌는 계산기가 아니다. 삶을 감당하는 장치다.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이 더 선명해졌다.
나는 가끔 그 선명함이 부담스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부담스럽다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내 뇌를 로봇에 이식한다면, 그건 나일까 로봇일까.
기억과 말투가 이어지면 사람들은 “너 맞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은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손끝이 시리지도 않을 것이다. 몸이 달라지면 감정의 리듬이 달라진다. 뇌가 붙잡는 현실의 질감도 달라질 수 있다.
『더 브레인』이 말하듯 자아가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계속 바뀌는 과정이라면, 그 존재는 ‘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나’가 된다. 답은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질문은 자꾸 따라온다.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따라 들어온 조용한 사람처럼.
책을 덮고 다시 그 가사를 떠올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그 말은 허무가 아니라 여백처럼 느껴졌다. 뇌는 바뀐다. 나는 바뀐다. 그래서 아직 괜찮다. 모든 게 흔들려도 환상 속에 ‘나’가 남아 있는 이유는, 그 환상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형태의 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실은 늘 그런 식으로 조금 비스듬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