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든 것은 타이밍

2026년 마흔을 맞이하며

by 쥬드

새해가 되면 달력부터 바뀐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기묘한 기분이 든다. 종이 한 장이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갑자기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한 로봇처럼 굴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나라고 해서 그 질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2026년이 되었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가끔은 만나이로 계산하며 현실을 유예해볼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장마철에 “나는 원래 비에 젖지 않는 체질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현관에 놓인 내 구두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다.

예전의 상식대로라면 마흔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고, 견고한 울타리를 가진 어른이어야 한다.


나는 아직 그 울타리 밖에서 서성거리는 쪽이다. 체크박스를 비워둔 건지, 체크할 펜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일부러 비워둔 건지. 이제는 나조차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 애매함이라는 공기 속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호흡해왔다.


마흔이 되니 몸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예전에는 밤을 새워도 다음 날 아침 맥주 한 잔이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밤을 새우면 그 여파가 3일 정도는 피로가 지속된다. 내 몸은 더 이상 ‘즉시 출고’ 가능한 신제품이 아니다. ‘영업일 기준 5일 내 배송’되는 구형 모델에 가깝다. 불만을 제기할 고객센터는 어디에도 없다.


의욕도 그 결을 같이 한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엔진을 가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오래된 데스크톱이 부팅될 때처럼. 화면은 켜졌지만 한참 동안은 팬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들린다. 그러다 문득, 아주 천천히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이 왜 20대와 30대에 그토록 서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지. 그건 낭만이나 결심의 영역이 아니라, 거의 체력의 영역이다. 체력은 사랑의 방해꾼이 아니다. 사랑을 움직이는 연료다. 연료통이 작아지면 사랑도 가끔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프면서도, 어딘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번의 인연을 통과해 여기에 서 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가정을 이뤘고, 아이들은 몰라보게 컸다. 친구들과의 단체 사진 속에서 내 위치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친구’가 아니라 ‘삼촌’이라는 카테고리에 수납되었다. 내가 승인한 적 없는 업데이트지만, 인생이란 원래 사용자 동의 없이 시스템을 변경해버리곤 한다.


한동안 나는 여러 공동체 속에 있었다. 독서모임, 동호회, 대학원.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의 온기는 생각보다 강렬한 마취 효과를 준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덕분에 나는 혼자 사는 것도 꽤 근사하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혼자는 지금의 혼자와 질감이 다르다. 그때가 두꺼운 코트를 입고 겨울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얇은 셔츠 한 장으로 찬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것들이 해체되고 재배치되었다. 다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예전처럼 매끄럽지 않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면 늘 비슷한 튜토리얼이 반복된다. 어색한 미소, 자기소개, 조심스러운 질문, 그리고 적당한 거리. 화면에는 “스페이스바를 눌러 점프하세요”라는 문구가 뜨는데, 내 무릎은 자꾸만 삐걱거린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마 관계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거겠지.


어떤 나이에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어떤 나이에는 억지스러운 연기처럼 느껴진다. 옷이 나쁜 게 아니라 계절이 바뀐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여전히 지난 계절의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거울은 그런 내게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진실을 피드백해준다. 요즘 거울은 말이 너무 많다.


2026년의 새해, 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살 거야?”

나는 이제 “모든 걸 잘해낼 수 있다”는 환상을 믿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감각을 얻었다. 몸이 알려주는 정직한 지혜다. 그래서 나는 올해의 목표를 아주 단순한 두 가지로 압축하기로 했다.


건강, 그리고 결혼.

먼저 건강.내 몸을 ‘나중에’라는 상자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거창한 선언 대신 꾸준한 루틴을 택할 것이다. 컨디션이 나쁘면 정신력을 탓하지 않고, 어젯밤의 수면 시간과 식탁 위의 메뉴부터 점검하겠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유난’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 결혼을 순전히 운의 영역에만 남겨두지 않겠다. 타이밍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내가 직접 설계해야 하는 기계 장치 같은 것이다. “이게 맞을까?”라며 결정을 유예하는 습관을 줄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기로 했다. 늦었다는 말이 자기암시가 되어 나를 갉아먹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새해는 이상한 계절이다. 어제와 오늘이 물리적으로 다르지 않은데도, 우리는 그 틈새에 의미라는 이름의 쐐기를 박아 넣는다. 하지만 그 쐐기 덕분에 삶은 조금씩 방향을 튼다. 방향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결국 내가 된다.


어쩌면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하지만 2026년의 나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타이밍을 조금씩이라도 깎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루지 않을 뿐이다. 특히 ‘언젠가’라는 모호한 단어로 내 인생을 장기 보관하지 않겠다.


나는 올해, ‘늦었다’는 말을 줄이고 ‘지금’이라는 말을 늘리는 쪽으로,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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