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의 출발점 / 4회
상담실에서 감정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많은 내담자들은 말을 멈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제가 예민한 거죠?”
“이 정도로 서운해하면 안 되는 거죠?”
그 질문 속에는 늘 같은 두려움이 들어 있다.
감정을 드러내면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한 내담자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몇 번이나 말을 고쳐 말했다.
불쾌했다는 표현 대신 “조금 아쉬웠다”고,
화가 났다는 말 대신 “제 기분 문제인 것 같다”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덜 튀는 것 같아요.”
감정을 숨기는 일은 대부분 예의라는 이름으로 배운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그런 표정 하지 마.”
“기분 나쁜 티 내지 마.”
“좋게 생각해.”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접는 법을 익힌다.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걸 들키지 않는 법을.
문제는 그렇게 접어 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정은 표현되지 않으면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몸의 긴장으로,
이유 없는 피로로,
사소한 일에 터지는 짜증으로.
상담실에서 그는 말했다.
“저는 웬만하면 참고 넘기는데요, 집에만 오면 너무 지쳐요.”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감정을 관리했다면 집에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예의를 지키느라 자기 마음을 계속 눌러왔기 때문이다.
감정을 말하는 것과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배웠다.
그래서 감정을 삼키는 쪽을 택했다.
이제는 그 배움을 조금 수정해도 된다.
감정을 말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서 멀어지는 관계도 많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인정은 생각보다 관계를 더 오래 살린다.
감정을 숨긴 건 예의가 아니라,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선택이 어떻게
‘의젓함’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