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괜찮은 척부터 배웠을까 / 2부

2부. 버티는 마음의 후유증 / 6회

by 다정다감 전수현

아프지 않으려고 버티다, 몸이 먼저 무너졌다.




상담실에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원장님, 저는 마음은 괜찮은데요… 몸이 이상해요.”


이 말은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괜찮지 않았고, 다만 아프지 않으려고 애써 버텨온 흔적이 몸으로 먼저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의 여성 내담자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책임감 강한 팀장이었고, 집에서는 늘 살림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원래 잘 버텨요. 힘들어도 참고 넘기는 게 익숙해요.”


그런데 그녀의 몸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유 없는 두통, 잦은 소화불량, 새벽마다 깨는 수면 장애, 갑작스러운 심장 두근거림 등,

병원에서는 “큰 이상은 없다”는 말만 반복되었다.

그 말이 오히려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상 없다는 말이요,

이상한데 이상이 없다니까 더 무서워요.”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몸의 언어를 ‘증상’으로만 해석할 뿐, 메시지로 듣지 않는다.


상담을 이어가며 그녀의 삶을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어릴 때부터 “참아야 착한 아이”였고,

울면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괜찮다고 말하는 게 먼저 배워진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버팀’은 미덕이다.

그런데 문제는, 버티는 데도 한계 용량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그 한계를 넘기 직전에 늘 이렇게 판단한다.

“지금 무너지면 안 돼.”

그래서 신호를 더 작게, 더 조용하게 만든다.


그 역할을 대신 떠안는 것이 바로 몸이다.

몸은 쉬지 말라는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다가,

결국 멈춤이라는 방식으로 항의한다.


두통은 “생각을 그만하라”는 신호이고,

위장 장애는 “삼키지 말라”는 메시지이며,

불면은 “아직 풀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표시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스트레스받아서 그래요.”

그리고 다시 버틴다.


상담 중에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았던 때가 언제였나요?”


그녀는 오래 침묵하다가 말했다.

“없는 것 같아요.

아프면 더 참아야 했던 것만 기억나요.”


이 대답에서 핵심이 드러난다.

아프지 않으려고 버틴 게 아니라,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워온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순간부터 상담의 방향은 바뀌었다.

‘버티는 법’을 줄이는 대신,

‘느끼는 법’을 회복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몸의 신호를 기록하게 했다.

두통이 올 때의 상황, 심장이 빨라질 때의 생각,

잠들기 전 떠오르는 말들 모두 기록하도록 했다.

신기하게도 몸의 증상 옆에는 늘 같은 문장이 따라붙었다.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지금은 내가 약해질 때가 아니야.”


이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증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담 후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몸이 아프면, ‘왜 이렇게 약해졌지?’가 아니라 ‘뭘 너무 오래 참았지?’를 먼저 묻게 됐어요.”


그 질문 하나가 회복의 시작이다.

몸은 고장이 아니라 경고등이기 때문이다.

무시하라고 켜진 불이 아니라, 살펴보라고 켜진 신호다.




알아차림 한 줄


괜찮아서 버틴 게 아니라, 괜찮아야 한다고 믿어서 버텨온 것이다.





다음 7회에서는

“이유 없이 피곤한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 습관”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