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현 자작시 #44
누구보다 빨리 철들어야 했던 아이
낯선 도시, 낯선 방, 낯선 사람들
낯섦 속에서
나는 울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말 대신 미소로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익히며
내 마음 대신
다른 이의 감정을 살피며 걸었다
나를 위로할 시간은 없었고
기쁨도 슬픔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깊숙히 접어 넣었다
그러던 어느 밤
꿈이 말을 걸었다
흙 묻은 옷 한 벌을 들고
“이게 네 마음이야” 하고
조심스레 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늘 남의 온도를 먼저 재고
나의 계절은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았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조용히 나를 안아주던 내가
언제나 함께 있었다는 것을
우주는 나를 잊은 적 없었고
조상들의 숨은 나를 떠난 적 없으며
내가 찾던 수호천사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이제야 만났다
기다려온 나와
지켜온 내가
서로의 손목을 감싸 쥐고
천천히 숨을 맞추는 시간
흐르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돌아온 나를 맞는
환영의 샘물이다
이제
나는 나의 편이 된다
나는 나의 손을 잡는다
나는 나의 이름을 부른다
지금부터 내 숨에 보폭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