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의 출발점 / 3회
상담실에서 “저는 착한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자랑하려는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은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장처럼 나온다.
마치 “그래서 여기까지 버텼어요”라는 말 대신에.
한 내담자는 상담 초반 내내 자신이 얼마나 주변을 배려하며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했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했고, 갈등이 생기면 먼저 물러났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본인 일부터 미뤘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근데요,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다.
대부분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시작된다.
집안 분위기가 불안정하거나 어른들이 여유가 없거나 아이의 감정까지 돌볼 힘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빠르게 배운다.
말 잘 듣는 아이가 되면 덜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때 아이는 선택한다.
울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기대에 맞추기.
그리고 그 선택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동으로 반복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착한 사람일수록 분노를 다루는 데 서툴다.
화를 내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관계가 깨질 것 같고, 미움받을 것 같고,
그동안 쌓아온 ‘괜찮은 사람’의 이미지가 무너질 것 같아서다.
그래서 분노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쪽에서 방향을 바꾼다.
자책이 되거나
무기력이 되거나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제가 너무 예민한 거죠?”
그는 상담실에서 그렇게 물었다.
아니다.
예민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아온 사람이다.
착함은 관계를 유지하게 해 주었지만 자신을 돌보는 법까지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 공백이 지금의 피로가 되었다.
이제는
착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는 경험을 조금씩 해봐도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해도 되는 시점이다.
착함을 내려놓는다는 건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나도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착함은 미덕이었지만, 나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착함이 어떻게
‘감정을 숨기는 습관’으로 이어졌는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