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즉 Generation을 나누게 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이다. 과거 독점적 지위의
시장확보를 위하여 소요되는 수많은 비용과 희생은, 안정적인 생산물량과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과거보다는 더욱 풍부한 물자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보와 개인의 다양한 수요, 시장형태의 변화에 따른 또 다른 독점적 시장인
빅데이터에 대한 독점적 접근 및 사용에 관한 권리가 시장의 중요한 재화가
되어가고 있다.
유형의 거래에서는 물건과 그에 대한 대가가 교환되며 시장이 형성되지만, 무형의 시장 중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빅데이터에 대한 독점적 접근 및 사용에 관한 권리는 누군가의 수요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모여지는 정보가 아니다.
딥러닝 방식의 로직(Logic)이 되었든 인위적인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데이터와 데이터 조합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로직(Logic)이 되었든, 빅데이터의 로(Raw)데이터가 모든 로직의 기본이 되며 현재 로(Raw)데이터 하나하나가
금전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로직이라는 수요에 의하여
데이터는 정보가 되고 정보는 금전적 가치를 형성하며 이는 수요의 중요성이나
정도에 따라 변동적 가치(가치의 변동 폭은 무한대로 가정하여야 한다. 수요자가
창출하는 부가가치에는 공급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가치의 부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를 가지는 재화로 다시 태어난다.
즉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이라고 볼 수 없으며, 수요와 공급곡선의 만남에
의한 시장형성이 아닌,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제공되고 동의되어진
모든 정보는 일차적인 로(Raw)데이터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시장의 필요가
생길 때까지는 그저 그 가치에 머물러 있으며, 수요는 각각의 수요자마다
필요로 하는 정보의 종류가 다양하여 그에 적합하도록 접근권한을 판매하는
형태가 된다.
그렇다면 식민지확보가 주요 목적이었던 독점적 시장확보 결국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가 현재 자유 시장 경제체제에도 그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문제는 데이터나 재화의 종류가 아니다. 가장 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독점적지위의 문제로 접근하여야 한다. 유형의 재화이든 무형의 데이터이든 결국은 소유와
사용에 대한 지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래의 방법인 네트워크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어느 곳에서든 어느 때든 접근과
연결이 가능한 상태에 와 있으며, 유형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도 거래할 수
있으며, 금전 등의 유가증권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 금융 수단도
널리 확산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사항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언뜻 같은 의미의 단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이는 단어이다.
우선 민주주의란 이상적인 사회운영과 삶의 방식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체제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모든 국가와 지도자들이 저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굳건히 수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다수결과 합의의 원칙을 내세우며 전 세계의 대부분 나라가 합의하고 운영하는 체제이다.
그러한 국가 대부분이 내세우는 경제체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점적지위의 시장이 확보되어야 하며 모든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수요가 있는 독점적 시장은 대부분의 몬스터급 기업체, 그리고
초강대국 간의 교환 시장이 되어가고, 경제체제는 또 다시 계급이 형성되었다.
풍부한 자원을 빙자한 저가의 재료공급, 기술과 자원도 없는 오직 싼 인건비를
자랑하는 국가로 자연스럽게 계급이 나누어지고 그곳이 또한 강대국의 시장이
되는 어찌 보면 기업체의 역할은 중간 매개자의 역할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은 지금은 사라진 봉건시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교환 축적하며 쌓여가는 부와 일부를
소비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대다수의 농노, 자기의 기술을 가지고 길드를
조성하여 그 역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상당한 권력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상공인들과, 매개자와 절대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해왔던 종교 지도자를 보면
지금의 우리 사회와 어떠한 점이 다른가?
소박한 지식과 좁은 시야의 내 눈에는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소리는 내지만 들리지 않을 뿐이며, 의사표시 또한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았다면 결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공정, 상식, 민주, 자유, 상생 이러한 도덕적 선언에 가까운 단어에 대한 맹목적인
이끌림과 찬양은 경계하여야 한다. 과연 우리가 지켜나갈 만한 사회적 이익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사표시가 존중되어지고 그 자유가 보장되어지는지,
그리고 무형적 재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재산권의 인정과 공중의 사용권 제한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어디까지가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침해하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공중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민주적인 해결방법은 다수결의 원칙을 배제하고는 없는 것인지.. 다수결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자유와 민주보다는 포장된 다수의 권력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참조 및 인용
1.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문예출판사 2009.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