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할아버지~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by 글씨가안엉망

쇼펜하우어쇼펜하우어

삶이 그렇듯이 죽음 또한 운명이자 숙명이다.

살아 있는 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의 의지와 노력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질 수도

포기와 절망이 가장 빠른 진통제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죽음을 삶의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삶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살아감은 행복을 찾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성이 없는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목적 따위는 없었다.

사르트르조차 이야기 했듯이 존재는 본질에 우선하니

우리는 우선 맹목적인 존재가 우선이었고

그 이후의 삶은 그 살아감의 형상에 따른 본질이 부여 될 뿐이다.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나 최종 목적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죽음의 필연성을 통해 인간은 영원의 존재도,

불변의 존재도 아니며, 우주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찮은 먼지 또한 우주의 순리를 따르지만

그 순리라는 것은 목적을 향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더 진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우리의 삶이

허무성이나 무의미 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내고 존재해나가는 것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이며,

고통과 공포를 덜어감에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존재의 맹목적성을 가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운명에 맞서는 세가지 힘이 있다고 했다.


"우선 현실을 자각하는 현명함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펼쳐질 운명을 알아내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눈앞의 일을 결정하는 것 뿐이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그 운명을 알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지금의 맹목적인 존재에 대한 현재의 삶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 뿐이다....


"둘째는 우연성에 대한 인정이다."


미래란 존재할 수 없듯이, 필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벤트는 우연이 지배하며 인간이 의지로 결정할 수 없다.

인간은 행운과 불행에 대해 요구할 권리나 결정할 능력이 없다.

즉 고통에 대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덜어냄에 만족할 때

그 이상의 결과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우연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용기이다."


예측도 필연성도 없는 삶에서 운명이 던져주는 시련에도 그저 존재하며

살아가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용기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당연히 존재하는 주체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인 인 것이다.


결국은 다시한번 삶의 맹목적인 존재성에 대한 주장인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없다, 그저 존재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용수 <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21세기북스김영사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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