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인간은 가장 혹독한 고통도 긍정한다.
고통이란 기독교적 의미인가? 비극적 의미인가?
아니면 고통과 공포를 감내하는 생에 대한 긍정인가?
마지막으로 살아내기 위한 인류 최후의 진화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는 고통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방법 또한
진화적인 관점에서 익히며 살아왔다.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고통 그 자체를 느끼며
그 안에서 버티는 삶을 말한다.
그 아픔과 고통에서 오는 살아냄에 대한 자기인식이며
자기부정 이전의 개별화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자기부정은 살아냄에 대한 자기인식이 아니라
자기인식의 결과에 대한 부정으로 결국은 자기인식에 대한
인정 이후의 부정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에서의 우리의 삶은 자기인식의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고통속에서의 살아냄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이며
생존의 목적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에 익숙해져버린
우리 뇌는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