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의 기원론...
제목만 보면 언틋 내용이나 흐름이 짐작이 가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읽으면서의 느낌은 음...어떤 오류가 전체의 논점을 흐트리고 있는
책이라고 시작하고 싶다.
평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지만 접근하는 내용에 대한 논점은
공정의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개념을 평등의 개념으로
설명하며 시작하고 있다.
서로와 서로에 대한 무한경쟁이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한
필요한 만큼의 소유와 취득 그리고 사유재산의 개념이 아닌
자연으로부터의 공여재산의 개념으로서의 토지와 식량의 운영이
자연인의 삶의 방식이었으며 서로 간의 동의가 필요없는
본능적인 삶의 방식이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삶의 방식은 평등의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든다.
평등의 개념은 비교의 개념으로 수평적이며
똑같은 소유와 시작의 개념으로 봐야하지만,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은 비교와 경쟁대상이 없는
삶의 방식으로 설명하면서도
평등이라는 비교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다.
왜 평등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자연인으로 존재했던 그 당시의 상황은 사회의 개념과
공동체의 개념도 없는 상태의 존재이며,
취득물 또한 자연의 공여상태의 취득물이며
소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저 소유라고 하면 내가 이미 취득해 놓은 것에 대한 소유정도?
그러다 종이 번성하고 진화하며 문명이 발전 할수록
제한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 시작되었으며,
강하고 영리한 우성을 나타내는 종일 수록
더 많은 소유와 점유 그에 따른 권력이 생기게 되었으며
열성인 종은 상대적으로 적은 소유와 점유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따른 권력의 지배하에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인에서 고대시대로의 변화는 평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평등의 개념은 경쟁과 비교우위를 가정한 개념으로
자연인의 상태를 설명 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가?
불평등이 아닌 불공정의 기원론이어야
더 적절한 설명이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이 든다.
평등과 공정은 아주 다른 개념이다.
평등이란 시작도 소유도 모두가 비교대상과 동일한 상태임을
말하고 있는 단어지만 공정의 개념은 기회의 개념과
존재가치에 대한 개념으로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불평등(불공정)의 시대로 되었는가?
반대로 묻고 싶다. 우리가 평등(공정)했던 적이 있었는가?
자연인의 시대에는 과연 평등(공정)한 시대였는가?
평등(공정)의 개념에는 연대와 공동체의 개념,
그리고 경쟁의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
자연인의 시대에서 인류라는 종은 누구와 경쟁을 하고 있었는가?
누구와 연대를 하고 있었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가?
없다.
다만 먹이의 대상과의 대결만 있었을 뿐...
그것은 경쟁이라기 보다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생존의 개념이었다.
결국은 자연인의 시대에도 상대보다 내가 강하지 않으면
먹히는 지금의 시대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럼 왜 자연인의 상태를 평등(공정)의 상태로 보았는가?
그것은 기회의 공정 때문이다. 강하고 약하고, 먹고 먹히고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모든 행위에 대한 기회의 공정이 보장이 되었던,
누군가에 의한 보장이 아닌 살아감의 방식이 그러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자연인의
상태로 보는 것은 틀린 것 같다.
경쟁의 시작이 되었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던 시대부터 불평등과 불공정이 시작되었으며,
문명이 발전할 수록 그 차이는 더욱 커져간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권력과 계층을 만들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며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시대로 변화해 간 것이다.
그리고 점차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며 합법적인
지배와 피지배로의 체제가 굳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평등을 말할 수 있는가?
모두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힘을 가지고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똑같은 바램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라면 가능한 개념이겠지만
모든 것이 다른 인간의 집단인 사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