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오지 않는 밤의 단상"쇼펜하우어 그리고 카뮈"

행복한 인간선언의 대상자 시지프스

by 글씨가안엉망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동은

쇼펜하우어적 ‘의지의 표상’ 인가?

카뮈적 ‘부정하지 않는 의지의 표상' 인가?”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의지는 물자체의 의지로

결코 인지할 수도 없으며, 지향점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카뮈의 시지프스 입장에서는

목표는 있으나 도달 할 수는 없고

의미도 부여되지 않으며, 반복되고 끝나지 않는 운명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의지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표상대로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의지의 내용으로 접근해 보면

중요한 점은 의지를 인지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의지를 부정하지도 않고, 의미를 만들지도 않으며

단지 부조리를 부조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있다

즉 부조리를 또 하나의 표상으로

살아가는 존재방식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카뮈에게 부조리는 결국 문제가 아니라

존재방식의 하나일 뿐이었으며,

무의미를 설정하여 거기서 이유를 찾지도 않는다.

의미를 원하던 무의미를 설정하던

결국은 의지를 인식할 수는 없으며

결국은 부조리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카뮈에게 부조리를 없앤다는 것은

곧 의미를 요구하는 인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결국은 부조리에 대한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거하지도 의미를 부여하지도

운명을 바꾸는 선택도 없이

그저 바위를 밀어올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바위가 굴러 내려올 것을 알고 있고,

밀어올림의 헛됨과 다시 시작됨을 알고 있으나

긍정이 아닌 반항의 형태로


"이것도 삶이다"


라며 비웃듯 웃으며 바위를 밀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 구원, 깨달음 어떠한 의식의 진행도 없이 삶을 붙잡을 뿐이다.

그래서 카뮈는 이야기 했다


"우리는 시지프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 한다"


왜 일까? 행복한 인간으로의 선언

결국은 부조리일지라도 운명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시지프스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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