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성숙은 빨랐고 그들의 영광은 짧았으며 그들의 망각을 향한 몰락은 그럴듯하고 장엄하게 질질끌었다. "
어디에서 봤던 문장인지 당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수첩에 적혀있을 뿐이라.. 이놈의 기억력.....
이 문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의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사회적 조급증과 즉각적인 반응과 소통에 익숙해진 우리는
빠르고 인식가능한 성공만을 긍정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도가 지나치게 가속될 때, 감속할 수 있는
브레이크는 우리에게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는 결국은 남겨지거나 잊혀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도의 끝이 찬란한
영광일지 허무한 무너짐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미 지나가버린 선택이기에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
빠르고 인식가능한 성공은 미완성의 또는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다져지며 서사를 가진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조급증과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환경에 의해
급격히 만들어진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어떤 것보다 빠르게 빛나지만,
금새 타고 없어지는 불꽃놀이의 화약처럼 인식만이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눈부시지만 동시에 쉽게 소모된다.
영광은 지속될 때의 결과가 아닌, 지나간 후의 평가에 가깝다.
조급증 사회에서 얻어진 영광은 결국 하나의 ‘순간’으로 축소되고,
불꽃놀이의 화상처럼 잠시 머물다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진다.
“그럴듯하고 장엄하게 질질끌렸다” 이는 단순한 추락이 아니라,
영광을 위한 나의 연극무대일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순간에 소비되는
나의 영광은 나를 더욱 못견디게 만들 것이기 떄문이다.
장엄하게 연출되면 될 수록 이면에는 결국 더 큰 망각이라는
종착지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오래 남는 것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지속성과 서사성이다
"빛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남겨지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