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요가

요가에 빠지게 된 이유

by 움이누나

2020년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홀로 연고 없는 k 시 땅에 자리 잡았다.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그 무엇도 하나 없는 내륙의 중심 k 시에 살게 된 것에도 다 뜻이 있었던 것일까? 거창한 하늘의 뜻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k 시가 싫었다. 지금도 나는 이 육지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아니 꿈이었던 ‘음악 교사’라는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올라온 타향살이에 나는 정말 마음 한 톨 둘 곳이 없었다. 3년간의 수험생활을 청산하며 망가진 몸이라도 바로잡아보고자 헬스, 수영, 필라테스까지 여러 운동을 전전하며 방황했지만 결국 운동에도 내 마음 한 톨 내려놓지 못했다.


임용고시만 합격하면, 당당하게 정규 교사가 된다면, 취미? 운동? 그 별거 아닌 것 한 번에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차일피일 후순위로 미뤄두었던 내 취미와 운동은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낯선 k 시 땅에서 느낀 외로움과 함께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다. 2020년 당시 혼돈에 빠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라는 지독하고 지독한 전염병은 전 세계 사람들을 일상 속에서 끌어내렸고 운동도, 공부도, 여행도, 사랑도 그 무엇 하나 쉽게 하지 못하도록 꽁꽁 가둬버렸다. 그래서 나는 나뿐만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내 그 다독임은 ‘하필 내가 죽기 살기로 임용고시를 합격한 해에? 여행도 못 가게 나를 이렇게 가둔다고?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길래 즐기지도 못하는 거야?’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전환되기 일 수였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에 비해 ‘여유시간’이 많은 직종인 교사인 내게 사람들은 머가 걱정이냐 물었다. 그렇게 여가시간에 많은데, 방학도 있는데 머가 걱정이냐고, 멀리 여행은 못 가지만, 그동안 네가 해보고 싶었던 거 하나씩 하면서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넌 참 미련하다고.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는데 절대 선물상자를 열어보지 않는 사람인 양 다그쳤고, 나무랐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게 없었구나, 나는 취향이라는 게 없구나’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시발, 나는 그런 거 없어. 그게 뭔데? 어떻게 가지는 건데? 취향과 관심사라는 건?”


그렇게 1년, 2년 남들이 하는 헬스 pt도 큰돈 주고받아보고, 필라테스 3개월 권도 끊어 간간이 ‘나 운동도 해보려고’라는 인상을 뇌에 심어주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물을 좋아하는 내가 ‘수영’이라는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처음 수영장을 등록한 날, 물속을 헤엄치며 아 드디어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근데 그것도 잠시,, 수영장 물에 피부와 머릿결이 상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 플러스 겨울철에 수영을 다니는 것은 감기 걸릴 위험이 크다(?)는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2번? 번? 수영장 물에 발장구 몇 번 쳐보고 또 그만둬버렸다. 그냥 쉽게 질려버렸던 것이다 수영이고 나발이고. 직장 동료들은 이미 내가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는 애로 인식한 것 같아 양치기 소녀가 되기 싫어 그냥 그런 애로 생각하게 내버려두었다.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수영 그만두었다고 얘기를 안 한 것뿐이니까.


시험 준비를 하며 대충 점심을 해결하기 좋았던 고봉민 김밥과 컵라면은 내 몸 안에 퉁퉁 불어 부종과 염증(쉽게 말해 살)을 만들어냈다. 그중 특히 뱃살과 턱살에 집중되었는데, 임용고시만 합격하면 정신없는 학교생활을 하며 그 살들이 자연스럽게 빠지길 기대했다. 역시 코로나라는 변수로 2주에 한 번 학생들을 만났고, 그 덕에 교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엉덩이와 허벅지, 등, 어깨 옆구리 등등 다방면으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나이 25살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돈만 헬스장에 가져다주면 살이 빠질 줄 알았는데, 웬걸 더 뚱뚱해졌다. 낯을 가리는 편이고(특히 남자들에게) 퇴근 후 누구와도 대화를 하기 싫었던 나는 헬스 트레이너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말을 시킬까 봐(레전드 싸가지) 나에게 주문한 운동량을 닥치고 해냈고, 선생님도 그런 내가 좀 무서웠는지 그냥 운동만 열심히 시켜주셨다.

즉, 나는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근육량이 단기간에 느는 걸 보며 헬스 트레이너도 신기해했으니까. 그렇지만 식단을 하지 않는 이상 붓기와 살은 그렇게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약 6개월 동안 PT를 받으면서(그것도 내가 게을러서 PT 약속을 쉽게 취소시키고 일주일에 한 번 간 날도 많았기 때문에) 꼴 보기 싫었던 나의 라운드 숄더와 출렁거리는 엉덩이를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은 너무 재미없었고, 무엇보다 헬스 트레이너와 말을 섞기 싫었던 나는 더 이상 PT 연장을 하지 않았다.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께 정말 1도 악감정은 없었음. 그냥 내 성격이 좀 더러웠던 것임)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한 나는 또 몇 개월간 운동이라는 종목에 관심을 꺼버렸다. 그렇게 2021년, 2022년 하반기까지 살아온 나는 지옥 같은 평일 5일을 꾸역꾸역 버티며 서울에 올라가는 주말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22년 겨울 몸에 이상 신호가 발생했다. 헬스를 그만둔 지 몇 개월 된 후였는데, 단순히 꼴 보기 싫은 정도였던 라운드 숄더가 이젠 더 심한 신호탄이 되어 내 목과 턱에 따발총을 싸댄 것이다. 조금만 모니터를 보면 목이 뻐근했고, 자고 일어나면 괴로운 담에 걸렸다. 그러다 처음으로 정형외과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정형외과 의사는 나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일자목’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의사선생님께서는 “병원에서 도수치료도 받고 운동 배우세요!”라는 세상 간단한 처방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물리치료를 받고 전문 물리치료사에게(부득이하게 이분도 남자였다) 구체적으로 아픈 곳이 어디인지, 어디가 불편한 지에 대한 조사를 받은 후 틀어진 뼈를 맞추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신경을 잡아낸 물리치료사는 한번 만으로는 통증을 잡을 수 없다 잔소리하며 꾸준히 도수치료를 받으라고 조언했고, 도수치료보다 더 중요한 건 운동이라 강조했다. 치료의 대부분은 운동을 시키고, 배우는 것이었는데 헬스에서 라운드 숄더를 펴기 위해 하던 동작과 유사했다. 속으로 ‘이런 거는 나 혼자 헬스장 가서 해도 가능이지’를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헬스를 끊을 것을 다짐했고 ‘나름 내가 교사인데 배운 것을 써먹지도 못할까?’라고 자위하며 실제로 집 앞 신호등 딱 한 번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응. 써먹지 못하는 교사였다. 그 헬스장 한 3번은 갔나? PT 6개월은 공중으로 자연 분해되었다.

절망스러웠다. PT에 쏟은 시간과 노력이 날아간 것보다, 내가 몸 바쳐 공부하고 노래하고 연주했던 24년의 세월이 남긴 건 결국 ‘일자목’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200만 원 조금 넘는 내 월급은 공부하고, 노래하며 들인 돈을 배상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래, 돈 많이 벌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니까. 애초에 교사가 된다는 건 재물과는 담을 쌓겠다는 것이니까. 명예, 그래 명예 그 하나만 있다면 학창 시절 내가 선생님을 우러러보며 가졌던 존경심과 애정을 나의 학생들에게 받는다면 돈이 무엇이 중요할까.


2000년 하고도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

내가 진짜 교사가 되어 현장에 투입된 지금 교사의 명예와 자부심은 바닥으로 아니 심해로 곤두박질 쳐진 상태였다. 첫해 고2 담임을 맡은 내게 우리 반 학생이 건네 온 말은 “나는 세상에서 교사가 제일 불쌍해요, 나는 절대 교사하면서 애들 뒤치다꺼리 안 해요”였다. ‘네 성적에 교대, 사범대는 꿈도 못 꿔, 교사는 뭐 아무나 시켜주는 줄 알아? 누가 너 교사 시켜준대? 너 정말 웃긴다...’ 속으로 여러 말을 되짚었지만 그 어떤 말도 학생의 말을 방어해 주진 못했다. 너무 큰 상처였다.


교사의 한 마디에 100명의 학생들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중 단 한 명 그 한 학생의 인생이 달라진다면, 아니 그냥 내 말 한마디에 학생 한 명이 살아갈 동력을 얻고, 꿈을 꾸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그보다 더 보람찬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나는 교단에 서기 위해, 나보다 어린 학생 한 명에게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꿈을 꾸며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하며 버텼다.

그런데 우리 반 학생에게 교사는 그저 ‘학생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이라니. 더 기가 찬 것은 힘든 본인들을 봐주고, 가르쳐야 하는 교사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 그리고 절대 본인은 그 ‘불쌍한’ 무리에 껴들지 않겠다는 다짐. 그 다짐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고,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존경이라는 거창한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학생들을 바로잡아 가르치는 게 나의 업이라 여기며 열심히 잔소리하고, 열심히 상처받았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남은 건 겨우 모아둔 돈 몇 백과 ‘일자목’이라니. 너무 우울했고 참담했다. 일자목은 점점 목 통증뿐 아니라 턱관절까지 퍼졌고, 숟가락을 입에 넣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조차 아플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나름 내 전공이 성악인데,,(물론 졸업 후 노래는 거들떠도 안 보았지만) 노래는커녕 말할 때 입을 제대로 벌리기가 힘들어 수업할 때도 턱을 최대한 벌리지 않고 말하기 연습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젠장.


먹고살기 위해 나는 도수치료사의 충고에 따라 나에게 맞는 운동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그 해 제주도에 살던 가수 이효리가 다시 방송을 시작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말 그대로 이효리가 가끔 일하러 서울 ‘체크-인’하면서 방송도 하고, 친구도 만나는 그런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파에 앉아 그 프로를 보면서 내 눈에 꽂혔던 건 바로 이효리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던 요가였다. 제주도에 내려가 살면서 매일 요가를 하며 수양을 했다던 이효리는 매일 아침 요가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화에서는 선배 가수 엄정화에게 물구나무 서는 자세를 알려주며 무서워하는 엄정화에게 할 수 있다 용기를 주고, 하지 못해도 된다 격려했다.


그때 나는 ‘저거다!’ 하며 요가를 콕! 찍었다.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이 없는 나지만 한번 호기심이 생기면 무작정하고 보는 미친(?) 추진력을 가진 나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집 근처 요가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딱딱 들어주지 않는다. 젠장.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늘이 요가를 하지 못하게 나를 억까(억지로 까지만) 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꽂혔던 나는 학교 근처(퇴근하면 학교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은데) 무려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거리(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쓰레기 버리러도 안 나감)에 있는 요가원을 찾아냈고, 곧장 요가를 등록했다.

사실 등록을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필라테스, 헬스, 수영 2년간 쌓아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요가도 쉽게 질리고 포기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래도 꽂힌 건 해봐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미 대부분의 운동은 다 질려버렸는데 하나 더 질린다고 머가 달라질까 싶어 그냥 다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2024년 7월 지금까지 요가에 질리지 않았다. 이 글을 처음 쓰겠다고 다짐한 날도 요가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시원한 얼음 물을 마시며 결정한 것이다. 왜 요가에 빠졌냐고? 글쎄. 딱 떠올릴만한 이유는 없다. 나 자신도 나를 잘 알 수 없기에 그냥 내가 아직 질리지 않은 거면 나도 내 신경에 따를 뿐이다.


그렇지만 그럴싸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첫째, 요가 선생님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헬스 pt는 선생님과 나의 1:1매치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싫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려면 결국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나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직업도, 나의 나이도, 나의 고민도 pt의 횟수가 다 소진되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선생님에게 굳이 말해 주기 싫었다. 물론 그 선생님도 나에 대해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그냥 퇴근 후에는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요가는 선생님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세에 대한 이름, 호흡법, 동작 설명 정도만 말하기 때문에 나의 답변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편했다. 근데 그건 필라테스나 수영도 회원들과 딱히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싸한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해냈다.


둘째, 요가는 운동하는 50분~1시간 동안 온전히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운동은 운동을 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몸에 집중해야 다치지 않고 온전히 그 몫을 해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몸에 대한 집중은 ‘직접 내 몸을 터치하고 관찰하며 정적으로 운동에 임할 수 있다’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영은 어쨌든 물이라는 위험요소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즉 물에 내 몸이 뜰 수 있어야 하고, 빠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물장구를 쳐야 한다.

그래서 그게 너무 숨 가쁘고 바쁘달까. 나는 좀 쉬고 싶은데, 너무 치열하게 아이들과 실랑이하고 왔는데 퇴근 후에도 물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게 좀 피곤했다.


그리고 헬스와 필라테스는 ‘기구’라는 어색한 장치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몸에 대한 집중도 있겠지만 안전에 대한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학교 안 무수히 많은 돌발 상황, 학생이 만드는 다양한 변수에 긴장하고 사는 나는 퇴근하고 나서까지 ‘긴장’하고 싶지 않았다.

요가는 기구 없이 온전히 내 몸 하나만을 가지고 충분히 숨 쉴 수 있는 공기 중에 운동할 수 있다. 즉 바쁘지 않아도 되고, 안전하다. 극도로 긴장하고, 예민해져 있는 나에게 요가는 너무나도 안전했고, 고생한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셋째, ‘사바사나’가 좋다. ‘사바사나’란 요가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휴식을 의미한다. "아니 방금 너가 설명한 요가는 한없이 안전하고 바쁘지 않다면서?" 그럼 50분~1시간 내내 쉬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건 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요가에 대한 오해다. 요가는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인 것 같다. 사바사나 이전 내 스스로 몸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치열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운동을 할 동안에는 딴 생각을 할 겨를이 통 나지 않는다.


‘너 이거 할 수 있겠어?’~ ‘그럼~가능하지’

‘오늘 하루 어땠어? 너무 고생했어’ ~ ‘응 너무 힘들었어, 고마워’

이런 식의 대화를 한 달까?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나에게 요가가 주는 1시간은 생각에 대한 유일한 pause 버튼이었다. 어떨 때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난도 동작을 해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쉽고 간단한 동작도 못해내며 나의 신체에 놀라고 감탄하고 실망하며 늘 마지막 단계 ‘사바사나’로 끝을 낸다.

오늘 하루가 괴로웠든, 즐거웠든, 사바 사나에 이르면 그냥 지나간 끝에 도달하였음에, 어떠한 하루였더라도 그런 하루를 살아온 내게 ‘수고했다’ 스스로 말해 주었다. 이렇게 어려운 동작도 해냈는데 내일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렇게 쉬운 동작을 못해 냈지만, 내일은 더 잘 될 거라고 위로했고 힘을 얻었다.


이렇게 거창하게 이유까지 들어가며 요가가 좋다고 설명하면 마치 내가 요가 고수인 것 같지만, 실제론 쌉초보 요가 수강생이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가지도 않고 많으면 일주일에 2~3번, 한 주에 한 번도 못 갈 때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2년 동안 요가를 절대 놓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던 턱관절 통증과 일자목 통증도 많이 없어졌다.

요가를 2주, 3주 못 가게 되면 귀신같이 다시 통증이 생긴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언젠가 한의사에게 턱관절을 완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물었던 적이 있다. 한의사는 완치가 불가하다고 했다. 통증이 약해진 것이지, 언제 다시 심해질지 모른다고 말하며 꾸준히 운동하고 몸의 근육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 침을 맞으며 나는 생각하고 또 다짐했다.


아 요가 평생 하라는 거구나. 평생 요가는 놓지 말아야지.


방학을 하면 엄마 아빠가 있는 나의 홈타운 T 시에 내려가지만 유일하게 고향에 내려가기가 망설여지는 건 내 집에 있는 식물과 요가였다. 적게는 한 달, 많게는 한 달 이상 집을 비워야 하니 식물은 살아나 있는 게 기적이었고, 내가 다니는 요가 센터도 잠시 작별 인사를 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T 시에 내려와 있을 때도 요가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엔 그냥 집에서 요가 영상을 틀어두고 몇 번 따라 하면 되겠지 싶었지만 역시나 말뿐 요가는커녕 침대 밖으로 잘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면 턱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엄마 집에서 분명 요양을 한 거 같은데, 잘 쉰 거 같은데 늘 몸은 더 아픈 채로 K 시로 복귀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돈 10~15만 원 아끼고자 했던게 내 몸을 더욱 망가뜨린 건 아닌가 싶었던 나는 지난 겨울방학부터 엄마 집 근처에 있는 요가원을 찾아다녔고 15만 원의 거금을 주고 요가원에 1달 등록을 했다. 해외여행이다, 명절이다 등등의 이유로 15만원치의 수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약 한 달 반 동안 그래도 요가를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꽤 만족했다. (엄마한테 욕을 한 바가지 먹었지만,,)


이 페이지를 쓰고 있는 지금, 여름방학이 다가와 나는 또 T 시에 내려왔다. 15만 원짜리 요가원을 결제하지는 않았고, 조금 더 타협해서 한 달에 6만 원인 요가원을 결재했고, 오늘 아침 10시 방학맞이 첫 수업을 수강하고 왔다. 역시나 엄마한테 잔소리를 때 바가지 들었지만 ‘내 돈 주고, 내 몸에 투자하는데 어쩌라고’를 시전하며(레전드 싸가지) 이번엔 주어진 회차를 모두 수강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허기진 배에 김밥을 쑤셔 넣었다.


앞으로 나는 요가를 열심히 할 것이라는 다짐은,, 못하겠다.

그렇지만 평생 요가를 내 인생에 놓지 않을 것이다.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하더라도, 언젠가 요가에 질려버릴 지라도. 나는 다시 요가를 시작할 거고 요가에 빠질 것이다.

질려버리게 힘들었던 하루 끝에 '사바사나' 동작을 하며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줄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도 오늘부터 요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떤가?

내 몸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위로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