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남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여 대학교를 다닌다는데, 나는 t 시라는 도시 한복판에서 평생 도시 여자로 살다가 j 시의 촌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20살 당시 대학교는 ‘군’에 속했지만 대학교 2학년쯤 j 시로 편입됨)
물론 내 성적은 뛰어났고, 대학교 역시 국내 최고의 사범대학교였다. 단지 위치가 촌에 있었을 뿐.
어쩌면 임용고시를 위해, 교사의 덕목을 지니기 위해, 모든 유흥시설과 세상의 반짝임을 멀리하라고 이런 촌에 대학교를 설립한 것은 아닐까? 라고 동기들과 나는 추측했다.
이제 갓 20살이 된 내게 그런 대학교의 ‘촌’스러움은 꽤 당혹스러웠다.
그뿐 만인가. 학교의 특성상 무조건 ‘기숙사’에 입사했어야 하는 나는 난생처음 보는 학우들과 3인 1실로 함께 생활해야 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것인지, 수련회에 온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무렵,
대학교 첫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부리나케 t 시로 도망쳐 온 나에게, 대학 동기는 자신의 고향인 k 시에 놀러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덥디 더운 여름날, 대학 동기와 동기의 가족분들은 나와 동기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맛있는 집밥과 함께 k 시 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렇지만 k 시는 예나 지금이나 개노잼이었고, 저녁이 되자 할 일이 없었던 우린, 대학 동기들의 고등학교 동창들을 불러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그땐 몰랐다. 대학 동기의 친구들이 모두 남자들 일 줄 은.. (당연히 여자친구들을 부를 줄 알았다.)
동네의 한 호프집에 들어서자 나타난 동기의 친구들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물론 나도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남자들이 없었을 뿐...)
당황하지 않은 척, k 시의 사투리를 쓰는 남자친구들과 하하 호호 시시콜콜한 대학교 생활을 얘기하며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그러다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남자가 호프집에 들어섰다.
휘황찬란한 문양이 그려진 저지에 반바지 운동복을 입고 있었던 뿔테안경을 낀 그 남자는 내 대학 동기와 유독 친해 보였다.
셋은 어떻게 친해졌냐는 둥,
소개팅, 미팅은 많이 해봤냐는 둥,
내가 살고 있는 t 시에 놀러 오고 싶다는 둥,
t 시에 놀러 가게 되면 나보고 가이드를 해달라는 둥,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 동기는 좋겠다. 저렇게 편한 남자 사람 친구가 있어서, 나도 남녀공학을 졸업했는데, 왜 연락하는 이성 친구 한 명이 없을까? 부럽네 참.’
그러다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지, 남, 여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쟤들도 말로만 친구지, 누구 한 명은 상대방을 좋아하고 있는 걸걸? 두고 봐라. 너희 둘이 무조건 사귄다,’
바뀐 생각을 생각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둘을 앞에 두고 입 밖으로 똥을 쌌다.
(주책바가지다. 약간 취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야!! 너희 둘, 지금은 친구지만 곧 사귄다에 내가 내 손목 건다!”
그 말에 대학 동기와 그 남자는 피식 ~ 웃으며 내 말을 들은 척도, 대꾸도 딱히 안 했다.
‘흥 웃기지 말라지, 누굴 속여~ 쟤네 분명히 나중에 사귈 거야, 아니 결혼할지도 몰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 대학 동기의 남자 사람 친구인 그 남자는, 현재 나와 10년째 연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