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 단 하나
스물아홉.
꽃처럼 빛나야 할 나이에
너의 시간은 멈추었다.
그리고 그날,
엄마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새벽 세 시
16년 전 가을.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머니… ○○가 자다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 응급실입니다."
회사에 들러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도록
하나하나 정리해 두고 택시에 올랐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줄 몰랐다.
새벽 6시.
응급실 침대 위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딸.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여섯 살 손녀는
놀란 채 차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오전이 되어 병실로 옮겨졌지만
딸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병원인 줄도 모르고
오직 "집에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여섯 살 딸을 집에 두고 왔다며
울부짖었다.
정신이 흐려 다칠 위험이 있다며
간호사는 딸의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었다.
발버둥 치다 상처 난 손목과 발목을 보는
내 마음은 검게 타들어 갔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그 말.
어린 엄마의 모성애에
병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병명도 모르는 채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룻밤 자면 퇴원하는 줄 알았다.
다음 날 입고 갈 옷과 신발을 챙겨갔다.
하지만 면회시간이 지나도
딸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하룻밤이 두 달이 되도록
중환자실 문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세상을 원망했다.
하늘을 원망했다.
신이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왜 내 딸인가.
차라리 나를 아프게 하십시오.
내 목숨과 바꿀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곡기를 끊다 쓰러졌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무너지면
딸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 있다는 말을 붙잡고
매일 딸의 귀에 대고 말을 걸었다.
행여나 남편이 면회를 못 오면
서운해할까 봐
"오늘은 쉬라고 했어" 하고 말했다.
어린 딸이 병원에 자주 오면 안 되니
집에서 잘 놀고 있다고도 했다.
딸이 보고 싶을까 봐
사진도 보여주고
침대 끝에 달아놓았다.
오늘 날씨가 좋다고.
몇 월 며칠이라고.
너를 믿는다고.
매일 이야기했다.
어느 날
의식이 돌아오기 힘들다는
의사 선생님 통보에
딸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 어떡하려고 이러고 있니.
신랑 불쌍하다며. 딸은 어떡하라고.
엄마는 이제 어떡하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잘 자.
내일 아침에 또 올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딸이 눈을 번쩍 떴다.
믿기지 않아 다시 불렀다.
"엄마 목소리 들리면 고개 돌려봐."
딸은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간호사들이 달려왔고
사위와 손녀가 들어왔다.
멀리서 오는 자기 딸을 본 순간
고개도 못 돌리던 딸이
두 팔을 흔들었다.
보고 싶었다는 듯.
살고 싶다는 듯.
그 모습에
중환자실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모성은 생명을 깨운다는 것을.
그러나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기적처럼 눈을 떴지만
후유증은 깊게 남았다.
난치성 뇌전증.
세상이 지어준 그 이름이
딸을 설명하는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딸아.
너는 병명이 아니다.
너는 여전히 따뜻하고
깊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는 안다.
네가 우리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하지만 기억해라.
너로 인해 우리가 힘들어진 적은 있어도
너 때문에 불행해진 적은 없다.
우리는 너를 책임으로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
엄마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신약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사주고 싶다.
돈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게 하고 싶다.
돈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일은 없게 하고 싶다.
돈이 있어야
딸을 세상과 다시 친구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여행을 가게 하고
세상 속에서 다시 웃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엄마가 너의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할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
스물아홉에 머물러 있는
너의 시간은 멈추었을지 몰라도
너의 존재는 멈추지 않았다.
너는 여전히 우리 가족의 중심이고
엄마 인생의 가장 깊은 이유다.
신이시여.
제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지 마십시오.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엄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