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가르침-Soul Education
작년 가을, 몇 해 만에 다시 찾은 인도는 제 수련에 작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몸은 변하고, 익숙했던 아사나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의 갈증이 시작되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그 물음은 점점 깊어졌고, 결국 저를 다시 인도로 이끌었습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B.N.S. Iyengar 지의 몰입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백세의 나이에도 숨을 통해 수련을 이어가시는 구루지의 모습은 제 안에 오래 남는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수련은 무엇으로 지속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 안에 남겼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쪽에 잠시 미뤄두었던 Tirumalai Krishnamacharya 지의 《Yoga Makaranda》를 다시 펼쳤습니다. 구루지의 말씀과 제 안의 질문이 맞닿으면서, 이 문헌을 한국어로 옮기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번역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문장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숨과 의도를 따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곧 제 수련 안에 남아 있던 질문들과 다시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사나는 몸을 정렬하고 의지를 단련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수련은 몸의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숨을 만나게 됩니다.
센터에서 회원분들과 함께 쁘라나야마(호흡법)를 이어가며 저는 또 한 번 배웠습니다.
사람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있으며,
그 세계는 이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서서히 스며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사용한 언어는 어쩌면 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쁘라나야마는 그 잊힌 언어를 다시 배우는 과정입니다.
내려온 숨을 기억하고, 다시 올라가는 길을 배우는 일입니다.
구루지께서 자주 사용하신 “soul education”이라는 표현을 저는 ‘영혼의 가르침’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지식을 쌓는 교육이라기보다, 수련을 통해 영혼의 방향이 서서히 드러나고 바로 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쁘라나야마는 숨을 오래 참는 기술이 아닙니다. 특별한 체험을 만들어 내는 수행도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의 구조 안에서, 각자의 매듭을 마주하며, 숨이 드러내는 것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 과정 속에서, 몸이 아닌 더 깊은 매듭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이 제 숨결과 삶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배우는 학생입니다. 다만 스승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알게 된 것은,
숨을 통해 우리는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일의 수련은 제 삶의 기준입니다.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 안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이 글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 기록입니다. 특별한 결론을 전하기보다는, 숨을 따라 걸어온 한 사람의 과정을 조용히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그 영혼의 가르침을 각자의 숨의 언어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간이 각자의 숨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