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기억된 그날의 석양
지중해 도시 특유의 향취가 느껴지는 오렌지 나무와 화사한 꽃나무가 늘어선 가로수를 지나, 수영장이 딸린 산골의 독채 주택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우리는 까르푸에 장을 보러 갔다. 코르시카는 프랑스령이지만, 고유의 문화와 프랑스적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500원짜리 바게트부터, 섬나라답게 풍부한 해산물까지—독일에서는 보기 힘든 식재료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독일에서 해산물이라고 해봐야 흰살생선 정도였기에, 식도락가인 마쿠스는 “지금 아니면 신선한 오징어는 못 먹어”라며 냉큼 집어 들었다.
아이들은 오징어의 낯선 식감에 인상을 찌푸렸고, 새미도 해산물을 즐기지 않아서, 결국 버터에 요리한
오징어는 나와 마쿠스의 몫이 되었다. 나는 간만의 해산물 파티에 만족하며 맛있게 접시를 비웠다.
우리는 코르시카의 험준한 산 구석구석, 이름 모를 바다와 호수를 여행했다. 새미는 말했다.
“호빵 넌 아마도 이 지역에 처음 와본 최초의 한국인일 거야! ”
그 말이 반가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행을 하면서
마음한구석이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새미와 마쿠스는 사소한 이유로 다툼을 벌였다. 마쿠스가 바닥에 쓸어 모아둔 쓰레기를 새미가 무심코 밟고 지나가면서, 쓰레기가 흩어진 게 발단이었다.
작은 말다툼은 결국 늘 그렇듯, ‘누가 더 많이 하고 있느냐’는 업무 분장 싸움으로 번졌다.
“내가 모든 걸 다 하고 있잖아.” 새미가 말했다.
“나도 하고 있어. 네가 모를 뿐이야.” 마쿠스가 받아쳤다. 유럽인이라고 해서 별다르진 않았다. 피로와 오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긴장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 역시 지쳐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붙어 지낸다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다. 혼자 숨 돌릴 틈조차 없다는 사실이 점점 나를 짓눌렀다.
좋은 친구와도 여행을 오래 하면 결국 싸우게 된다고 하지 않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차에 남아 있을게”라고 말하며, 조용히 나만의 숨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후, 가족들이 근처 도시를 둘러보자고 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에 남겠다고 말했다.
새미는 내 기분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호빵, 우리 오늘 진짜 멋진 데 갈 건데 안 갈 거야?”
“응, 나 오늘은 숙소에서 좀 쉴게.”
“너 후회할 수도 있어. 진짜 멋져. 같이 가자.”
평소 같으면 내 선택을 존중해 줬을 새미였지만, 이날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그들은 나를 코르시카의 절벽 위에 지어진 도시,
보니파치오(bonifacio)에 데려갔다.
절벽 위의 도시에 올라 석양에 물드는 도시와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로
깊이 새겨졌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 생애 베스트 3 안에 드는 풍경이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또다시 일으켜줄 장면이 있다는것 또한 그때 알았다.